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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 EV와 제주투어, 70주기를 맞은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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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 EV와 제주투어, 70주기를 맞은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를 가다

입력
2018.03.1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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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렌터카에서 빌린 볼트EV와 함께 제주 곳곳을 여행했다.
롯데렌터카에서 빌린 볼트EV와 함께 제주 곳곳을 여행했다.

기자는 제주도를 좋아한다. 일이든 일이 아니든 1년에 2~3회는 제주도를 찾아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행동은 어느새 제법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기자가 제주도를 갈 때마다 꼭 찾는 장소가 있다.

바로 올해로 70주기를 맞은 4.3 사건의 현장, ‘제주 4.3 유적지’인 섯알오름 학살터다.

이번 방문은 제주도에서 이뤄진 별도의 일정을 소화하던 중 방문한 탓에 롯데렌터카의 쉐보레 볼트 EV와 함께 했다. 사실 그 동안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를 올 때마다 주변이 모두 농지라 다른 차량을 가져 오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이번에는 배출가스가 없는 차량과 함께 와 발걸음은 조금 가벼웠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는 사실 농경지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는 당시 사건이 있던 장소가 일본군의 탄약고터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주공항을 기점으로 하면 약 43km의 거리에 있고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참고로 제주 4.3 평화기념공원은 제주시 명림로 430에 위치하고 있다.

기자는 중문에서 이동했기 대문에 해안도로를 이용해서 섯알오름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운 마음은 아무래도 올해가 4.3 사건의 70주기라 그랬던 것 같다.

참고로 4.3 사건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금기어처럼 여겨졌으나 2000년대 이후 4.3 사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2003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건 55년 만에 최초로 국가원수의 첫 사과 등이 이뤄졌다.

‘한 알’ 구조물이 눈길을 끄는 곳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 주차장 인근에는 지난해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구조물이 마련되었다. 김해곤 작가의 작품인 ‘한 알’은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와 인접해 있는 알뜨르 비행장과 호흡을 한다. 김해곤 작가는 밀 밭을 만드는 ‘한 알’의 시작의 의미를 담으며 전쟁의 역사가 있는 비행장에서 평화가 자라는 것을 기원한다.

제주의 아픔, 4.3 사건

앞서 말 한대로 1990년대까지, 그러니까 이승만부터 이어진 보수 정권 체제 아래에서는 금기어처럼, 그리고 왜곡되어 전해져 왔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행정부의 보살핌 속에서 그 내막과 아픔이 제대로 알려지고 위로 받은 것이다. 4.3 사건은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 중 하나로 보도연맹 학살사건과 더불어 민간인 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섯알오름 학살터 초입에는 당시 사건 진행에 따른 소개가 비석으로 설치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4.3 사건은 크게 다가오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한의 이념 갈등 발단이 되어 봉기한 남로당 무장대와 미군정과 국군, 경찰간의 충돌 과정을 시작으로 이승만 정권 이후 미국 정부의 묵인 하에 벌어진 초토화작전 및 무장대의 학살로 많은 주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적어도 민주국가에서는 발생해서는 안될 사건이다.

또 제주 4.3 사건이라고 불리지만 그 날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증언 및 사료에 따르면1947년 3월 1일부터 한국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휴전 이휴에도 살려지지 않은 민간인 살해 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의 잔혹함이 드러난 사건 중 하나다. 제주도 전체를 ‘빨갱이의 소굴’처럼 평하며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참고로 이 계엄령은 현재까지도 ‘불법’ 논란이 있다.

송요찬 계엄사령관과 그 휘하의 계엄군은 ‘초토화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중산간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주민들을 폭도로 간주해 학살했다. 게다가 총살된 가족을 보며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게 만드는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강요하기도 했다. 또 어떤 곳에서는 계엄군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살연습을 하기도 했다니 그 잔혹함을 이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섯알오름 학살터에는 ‘백조일손’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간단하다. 시체가 뒤엉켜 있고, 제대로 수습이 된 것이 없어 수 백 개의 손이 누구의 손인지 모르기 때문에 제주도 그 자체의 가족, 조상이라 명하기로 한 것이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지금 현재까지도 자신들이 보수라 말하는 혹자들이 ‘남한 단독 정부 수립 반대한 운동’ 혹은 ‘남한 적화기도 무장 반란 폭동' 등으로 종북 몰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섯알오름 학살터 인근에는 알뜨르 비행장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1933년 일본 해군에 의해 임시활주로 형식으로 최초 조성된 비행으로 일본의 상하이 전투를 비롯해 일본의 전쟁기지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십 여 개의 콘크리트 격납고가 현재 남아있다.

2017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바뀐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4.3 사건과 같은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2006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과거사 정리 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지금껏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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