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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세계의 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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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세계의 맛을 찾아서

입력
2017.06.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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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 논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세계의 ‘맛’들

#2

우리가 다양한 풍미를 좇고

거기에 기꺼이 대가 치르면

미래에도 식탁에 남아 있을 것

충분한 초콜릿 맛이라는 게 있을까. 편협한 입맛과 다양한 맛에 가치를 지불하지 않는 문화 때문에 우리의 식탁은 더욱 왜소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충분한 초콜릿 맛이라는 게 있을까. 편협한 입맛과 다양한 맛에 가치를 지불하지 않는 문화 때문에 우리의 식탁은 더욱 왜소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빵 와인 초콜릿

심란 세티 지음ㆍ윤길순 옮김

동녘 발행ㆍ468쪽ㆍ1만9,000원

미식 논쟁만큼 첨예한 게 있을까. 맛에는 추억이 개입한다. 트럭에서 파는 밀가루 떡볶이 보다 좋은 쌀과 태양초 고춧가루를 쓴 떡볶이가 더 위생적이고 가치 있더라도, 트럭 떡볶이에 어린 시절의 입맛을 저당 잡힌 이에겐 그것만이 ‘진정한’ 떡볶이다. 맛에는 빈부격차도 개입한다. 와인이나 커피의 맛을 품평하는 이들은 늘 “재수없다”는 타박을 감수해야 한다. 비싼 것, 그 중에서도 물 건너온 것에 대한 한민족의 시선은 야박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와인의 맛과 차이를 명백히 인지하면서도 “소주가 최고”라는 말로 자신의 소탈함을 증명하려는 촌극도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맛에는 성차별도 개입한다. 가마솥에서 갓 지은 밥과 방망이로 숱하게 두드려 만든 북엇국의 맛을 찬양하는 이들 중 제 손으로 그것들을 만든 이들은 많지 않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만든 음식들에 ‘진정한 맛’의 딱지를 붙여주는 이들은 거의 항상 남성이다. 그 결과 이 나라의 미식 논쟁은 민족주의와 빈자의 상실감, 가부장주의, 꼰대 의식이 뒤범벅된 진흙탕 싸움이 되기 일쑤다.

심란 세티의 책 ‘빵 와인 초콜릿’은 이 답 없는 싸움판에 참신한 기준선을 제공한다. 바로 ‘생물다양성’이다. 음식, 지속가능성, 사회 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언론인이자 교육자인 세티는 잃어버린 맛을 찾아 수년 간 전세계를 여행한 뒤 이 책을 썼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혹은 누려야 할 수많은 맛과 풍미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맛들에 가치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음식을 안전하고 풍부하고 더욱 맛있게 공급하려고 쉼 없이 노력하는 용기 있고 혁신적인 사람들을 만나며 지난 3년을 보냈다. 그 동안 여섯 대륙을 여행하며 과학자와 농부, 요리사, 빵 굽는 사람, 와인 빚는 사람, 맥주 빚는 사람, 환경 보호 활동가, 종교 지도자 등 온갖 유형의 옹호자와 전문가를 200명 넘게 인터뷰해, 우리 음식에 관해 조예 깊은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하면 우리 음식을 위기에서 더 잘 구하고 더 잘 맛볼 수 있는지 배우려고 했다.”

저자가 말한 ‘위기’란 말 그대로 멸종 위기다. 그가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 에콰도르의 카카오 대농장에 갔을 때 거기서 본 건 온 나라를 뒤덮다시피 한 카카오 나무 CCN-51이다.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만들기 위해 오메로 카스트로라는 과학자가 개량한 CCN-51은 거대한 열매, 풍부한 지방, 엄청난 수확량, 가지치기에 용이한 작은 키 때문에 에콰도르 전통 카카오종을 빠르게 밀어냈다. CCN-51과 전통 품종 중 하나인 나시오날의 맛 차이는 초콜릿 연구가 크리스티안 멜로에 따르면 “값싼 향수”와 “샤넬 넘버 파이브”의 차이다. 문제는 두 품종이 같은 가격에 팔린다는 것이다. 나시오날에서 터져 나오는 꽃 향기와 복합적인 풍미는 CCN-51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지만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다. 크리스티안은 그렇기 때문에 CCN-51이 결국 에콰도르의 카카오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택한 초콜릿의 맛이다. “사람들은 맛에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을까요? 두 배? 세 배? (…) 맛에 돈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저자는 맛과 풍미의 말살을 막을 수 있는 이가 누구인지 묻는다. 농부 입장에선 전통 품종 보존에 대한 사명감 보다 생계가 우선이다. 다국적 기업은 소비자에게 균일한 맛을 약속할 의무가 있다. 스니커즈 초콜릿바에서 예기치 못한 꽃 향이 터져 나온다면 찬사 못지 않게 많은 항의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막을 이는 결국 먹는 자들, 즉 우리 자신이다. 저자는 우리가 “먹음으로써 구한다”고 표현한다. 다양한 맛을 시도하고 독특한 풍미를 좇고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꺼이 보상하는 행위가 우리의 미래 식탁과 미래의 지구를 구할 것이란 얘기다. 이것은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

“음식을 통해 몸을 정화하는 일에 전문가라는 사람은 하나같이 내게 더 금욕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영혼을 살찌우는 일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생존하려고 이 지구에 있는 게 아니다. (…) 농업 생물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분명히 있고 우리는 그 모든 다양한 음식들이 맛있다는 사실을 축하해야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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