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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핵 없는 한반도 지향… 남북 정상 모두 적극적인 초유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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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핵 없는 한반도 지향… 남북 정상 모두 적극적인 초유의 상황”

입력
2018.04.20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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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비핵화 의지 없다면

한미중 정상 모두 속은 것

한미훈련 이해ㆍ핵실험 동결은

쌀 수십만 톤 줘도 안 했을 결정

북미 비핵화 타결 선행회담 성격

의제 폭ㆍ합의 수준 제한 불가피

상대가 확신할 만한 틀 만들고

평화ㆍ공동번영 대가 받을 수 있게

창조적이되 실현 가능한 발상을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17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정부에 그는 "협상 상대를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배우한 기자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17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정부에 그는 "협상 상대를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배우한 기자

“저는 오래 전부터 (대다수가)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할 때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거라고 꾸준히 주장할 만큼 한반도 정세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봐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모든 상황이 제 상상을 넘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상상력 빈곤을 느낄 정도로요.”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60)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만난 건, 4ㆍ27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열흘 전인 17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 대북 정책 멘토인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내가 대통령 외교안보 멘토 중 하나라는 평가를 듣는데 문 대통령이 4월 남북 정상회담을 결정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꽤 유명한 북한 연구자에, 책까지 쓴 북중 관계 전문가인데도 북미 정상회담이 5월에 열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월에 방중하리라고 역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신중하되 대담하고, 창조적이되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발상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문했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바는 대북 대화에 임하는 자세다. 그는 “올 1월부터 김 위원장이 보여준 리더십이 과거와 다른 게 사실이지만 북한이 외부세력의 체제 비난을 자기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시대와 상관없이 일관적”이라며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성과 있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당부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국면 전환이 한반도 내부로부터 추동됐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매번 회담이 한쪽(남측)이 한쪽(북측)을 설득해 만들어졌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남북 모두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초유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서로 동기는 달랐을지언정 남북 정상이 지향하는 한반도 미래상이 대결과 긴장의 한반도가 아니라 비핵화를 전제한 긴장 완화의 한반도라는 점은 공통적”이라며 “최소한 한반도 미래를 함께 논의할 수 있을 정도의 비전을 두 지도자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회담이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가 목표인 유기적 연쇄 회담 중 선행 회담 성격을 4ㆍ27 정상회담이 갖기 때문에 비핵화 트랙과 별개였던 1, 2차 정상회담과 견줘 핵 문제 해소에 기여하는 바는 훨씬 크지만 역설적으로 합의 수준 및 완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_조언자 입장이 되니 소회가 어떤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최소한 전쟁 걱정 없는 한반도를 만들려 했다. 그게 노무현 대통령 염원이기도 했다. 나아가 남북이 공동 번영할 수 있는 시대도 만들고 싶었고 노력도 꽤 했다. 하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 탓에) 상황은 그때보다 나빠졌다. 그러나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이라는 결실을 맺을 가능성은 더 커진 듯하다. 그래서 설레고 기대감도 크다. 분단 73년 만에 남북ㆍ북미가 양 축인 한반도 대결 구조를 동시에 해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_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보나.

“과거에는 우리가 북한을 설득해 정상회담이나 여러 합의들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 위기의 원인 제공자였던 김 위원장이 능동적인 전략적 결정을 내리면서 성사됐다. 남북 양 주체가 모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초유의 상황인 셈이다. 더욱이 이행 과정에서 장애 요소들을 제거하기 쉬운 톱다운(top-downㆍ하향식) 방식으로 문제 해결이 추구되고 있는 데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톱다운 방식에 최적화한 지도자다.”

_어떻게 이런 대화 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었나.

“평창 동계올림픽을 한반도 평화 정착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와 핵 가진 빈곤을 벗어버리고 고도 성장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이 맞아떨어졌다. 서로 동기는 달랐지만 두 정상이 의지를 갖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_계기가 마련되는 것과 굴러가는 건 다른 문제다.

“두 정상의 동기는 달랐지만 지향하는 한반도 미래상에는 일정한 공통성이 있었다. 그게 지금 우리를 안도하게 하는 거다. 만약 김 위원장이 핵 군축 대화를 하자고 나왔다면 대화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대결과 긴장의 한반도가 아니라 긴장 완화의 한반도라는 공통의 지향점이 있고 최소한 한반도 미래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비전을 두 지도자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외부세력이 아니라 남북 양 주체가 거대한 데탕트(긴장 완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환 국면의 의미가 더 크다. 미국까지 자발적으로 끌려들어오지 않았나.”

남북 정상회담 열흘 전인 17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배우한 기자
남북 정상회담 열흘 전인 17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배우한 기자

_공들여 만든 핵무기까지 포기해가며 북한이 바라는 게 뭔가.

“액면을 보면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이다.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북한의 열망은 대북 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적 도약일 거다. 하루 세 끼 겨우 먹는 북한은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게 아니다. 김 위원장은 고강도 제재만 없다면 연 15% 이상의 고도 성장이 가능했으리라고 믿고 있을 거다. 김 위원장의 벤치마킹 대상은 중국이다. 중국처럼 정치 체제 약화 없이 수십년간 고도 성장하는 나라가 김 위원장이 꿈꾸는 풍요로운 유토피아다. 핵을 포기하는 대담한 전략적 결정의 배경에는 북한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개성공단에서 입증됐듯 북한 노동력은 기업에게 꿈의 노동력이다. 노동조합 없는 대한민국 노동력이라 보면 된다. 경공업 기술과 정보기술(IT)이 뛰어나고 무궁무진한 지하자원과 물류 통로가 될 수 있는 지리적 위치 등 다른 경제 자원도 풍부하다. 외부 자본과 기술이 여기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거다.”

_1, 2차 남북 정상회담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1, 2차 때는 핵 문제가 남북 회담의 본질이 아니었다. 비핵화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남북 관계 속에서의 평화나 화해, 공동 번영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3차 회담에서는 핵 문제가 직접 다뤄지는 건 물론 다른 의제를 압도하고 있다.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과 의제의 교집합 영역이 크다. 의제 폭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북미 간 비핵화 대타결의 디딤돌 구실을 해야 하는 선행 회담인 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를 독식하고 싶어할 게 뻔하기 때문에 합의 수준이 높을 수도 없다. 그걸 이해하면서 상황을 봐야 한다.”

_합의문이 앙상해질 수 있다는 얘기인가.

“비핵화 문제의 경우 그렇다. 회담에서 논의된 많은 얘기들이 합의문에는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간 성과를 갖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거니까. 제재에 얽힌 경제협력도 핵 문제가 해결돼야 논의가 가능하다. 그래서 북미 정상회담 뒤인 8~10월에 2018년 제2차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 북미 대타결이 이뤄진다는 전제가 있으면 이때 비로소 경협이 핵심 의제가 된다. 1차 회담 보완 성격의 2차 회담까지 성사돼야 완결된 2018년 남북 정상회담 한 세트다. 다만 남북 간에 고유하게 합의될 수 있는 영역들도 존재한다.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해서는 남북 군사 대결 종식 선언 및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철수 등 이행 조치, 서울ㆍ평양 대표부 교환 등이 합의 가능한 의제들이다. 요컨대 원론적인 내용의 2000년 6ㆍ15공동선언과 구체적인 2007년 10ㆍ4선언의 중간 수준 합의문이 나올 듯하다.”

_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믿을 만한 건가.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면 이미 정상회담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정상회담에 합의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속은 거다. 또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이해한다는 언급이나 핵ㆍ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동결) 결정은 (의지가 없었다면) 쌀 수십만톤을 줘도 하지 않았을 거다. 정상들에게 약속하고 살점 두 개를 떼어준 셈인데 이쯤 되면 오랫동안 핵 기만술을 믿어 왔어도 내 신념이 틀렸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다수 언론과 학자의 대북 시각이 너무 경직돼 있다.”

_대북 협상 과정에서 경계하거나 유의해야 할 게 있을까.

“기본적으로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상대가 한반도에서 생존ㆍ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고 그 대가로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의 토대를 받는 게 협상이다. 더불어 중요한 건 상대 처지에서 뭐가 필요할지 이해하는 거다. 그래야 내가 뭘 받을 수 있을지도 파악할 수 있다. 정부가 잘 할 거라 믿는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이종석 연구위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2003~2005년)을 거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2006년 2월 장관으로 임명됐지만 그해 10월 북한이 첫 핵실험을 벌이자 두 달 뒤 직을 내려놨다. ‘자주국방과 균형외교를 통한 평화번영’이라는 참여정부 통일외교안보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뒤 이를 구현할 사령탑인 NSC 체제를 설계하고 사무차장ㆍ상임위원장을 맡아 4년간 사실상 정책을 총괄했다. 현재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4ㆍ27 남북 정상회담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1958년 경기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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