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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동산으로 먹고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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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동산으로 먹고 사는 나라

입력
2017.06.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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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바라 본 한강 주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바라 본 한강 주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짠순이’란 별명이 붙은 20대 후배 기자는 월급의 20%를 월세로 내며 산다. 그는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쓰고 생활비를 가능한 한 아껴 월급의 절반은 꼬박꼬박 적금을 붓고 있다. 고향이 지방인 짠순이의 꿈은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월세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짠순이의 적금으로 아파트를 사려면 최소 20년은 더 모아야 한다.

‘억척이’로 유명한 30대의 아는 동생은 매달 200만원 가까이를 대출 원리금으로 갚고 있다. 3년 전 다소 무리를 해 아파트를 산 뒤 명목상의 집주인이 됐지만 생활은 더 궁핍해졌다. 실질적인 집주인은 은행이다. 월급날이 돌아와도 은행 대출 원리금이 빠져 나가면 아이 학원비도 빠듯하다. 억척이의 꿈은 ‘이자 없는 세상’이다. 그 꿈은 30년 후나 가능하다.

우리 사회 2030세대들의 모습이다. 코피 쏟아가며 공부해 취직한 뒤 뼈 빠지게 일해도 결국 그 과실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이라는 괴물이 먹어 치우고 있다. 지대 추구 자본주의다.

지난 1분기엔 사실상 나라 전체가 부동산으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1~3월 열심히 일해 만든 모든 재화(물품)와 용역(서비스)을 돈으로 환산한 국내총생산(GDP)은 384조2,846억원이다. 지난해 4분기 대비 1.1% 늘어났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계속 0%대였던 전기 대비 GDP 상승률이 1%대로 올라선 것은 여섯 분기만의 일이다. 경기 회복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1분기 성장률을 세부항목별로 쪼개보면 부동산 시장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분기 건설업은 5.3%나 성장했다. 같은 기간 서비스업이 0.2% 성장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1분기 깜짝 성장률은 건설이 나홀로 주도한 셈이다. 서비스업 중에서도 음식 및 숙박 부문은 1.6% 감소한 반면 부동산 및 임대 부문은 2.3% 증가했다. 1분기 건설 투자도 6.8%나 늘었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설비 투자도 4.4% 증가했지만 건설 투자 증가율엔 미치지 못했다. 부동산 경기에 힘 입어 깜짝 성장률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건설투자 기여도를 빼면 1분기 GDP 성장률은 0.0%다.

1분기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것도 부동산과 무관하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1분기 당기 순이익은 4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0%나 늘었다. 대손 비용 감소 등 일회성 이익이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이자 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4,000억원이나 증가한 8조8,000억원에 달했다. 3월말 기준 가계부채가 1,360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수많은 ‘짠순이’와 ‘억척이’들이 열심히 일해 결국 은행 주머니만 불려준 셈이다.

은행 실적이 개선되며 금융주는 연일 강세다. 이러한 흐름이 최근 코스피 사상 최고가 행진을 떠받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주식 시장도 부동산 시장의 영향이 적잖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몇 달 만에 1억원 안팎 오른 집값을 보면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공교롭게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상승폭은 더 급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둔 것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부동산도 중요하다. 아직 정부의 뾰족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집값을 잡으려다 오히려 부동산 폭등만 초래한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섣부른 대책을 내 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책의 생명은 타이밍이다. 너무 늦어선 곤란하다. 기왕이면 단기적인 처방보다 ‘부동산으로 먹고 사는 나라’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근본적 수술이 나오길 기대한다. 일자리가 생겨 월급을 받아도 월세나 이자로 다 뺏기면 무슨 소용인가.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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