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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론 브란도의 고독한 영혼이 쉬는 섬, 테티아로아

입력
2017.10.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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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테티아로아 섬.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테티아로아 섬.

어느 추운 겨울 날 새벽,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보고 며칠간은 충격의 잔상에 시달린 것 같다. 그 후로 말론 브란도(1924~2004)가 출연한 영화를 보는 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현기증이 나곤 했다.

배우 폴 뉴먼이 “내가 평생 동안 이룬 것을 그는 29세에 다 이루었다”고 회고했을 만큼 말론 브란도는 서른이 되기 전에 배우로서 최고의 명예를 거머쥐었다. 아카데미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여덟 번 오르고, 두 차례 수상하는 등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고 허무주의에 빠진 이 천재 배우는 인터뷰 중에도 스스럼없이 “나는 배우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낍니다.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겁니다. 마르크스, 간디, 헤밍웨이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배우는 너무도 하찮은 존재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격정적이고 엽기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영화들이 많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알코올 중독에 도박을 일삼고 아내를 때리고 처제를 강간하는 난봉꾼 역할을, ‘워터 프론트’에서는 돈 받고 사람을 패는 깡패 역할을, ‘대부’에서는 조직폭력배 두목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는 섹스 중독에 빠진 변태 중년으로,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전쟁의 광기에 미쳐버린 군인으로 출연했다.

말론 브란도와 타히티 출신 아내 타리타.
말론 브란도와 타히티 출신 아내 타리타.

기이한 행동으로 감독을 말려 죽이려는 배우로도 유명했다. ‘대부’에서는 촬영 당일, 제작사가 자신을 홀대했다는 이유로 세트장에 나타나지 않아 코폴라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부랴부랴 고쳐야 했다. ‘지옥의 묵시록’에선 날렵한 대령 역을 맡았지만 체중 조절도 하지 않고 대본도 익히지 않은 채 즉흥연기로 일관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체중 조절에 실패한 그는 자신의 거구가 카메라에 담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마지막 작품인 ‘스코어’ 촬영 중에는 아예 전신을 찍지 못하도록 바지를 안 입고 ‘노 팬티’ 상태로 세트장에 등장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연기자로서의 성공과는 달리 사생활은 여러모로 불운했다. 1990년 첫째 아들이 살인죄로 구속되고, 그의 딸도 충격을 이기지 못해 1995년에 자살한다. 아들의 변호를 위해 수백만 달러의 빚을 지게 돼 연금으로 생활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소문과 달리 2억2,000만달러에 달하는 유산을 남겨 15명의 자식이 골육분쟁을 일으켰다.

결혼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첫 번째는 1957년 안나 캐쉬피와, 두 번째는 1960년 멕시코 여배우 모비타와, 세 번째는 타히티 출신의 타리타(Tarita)와 결혼했다. 고단하고 불운한 삶의 여정에도 그의 유일한 안식처가 있었는데, 마지막 아내인 타리타와 함께 한 ‘테티아로아(Teti'aroa)’라는 섬이다.

테티아로아 섬의 ‘더 브란도’ 리조트
테티아로아 섬의 ‘더 브란도’ 리조트
해변과 바다색이 환상적이다.
해변과 바다색이 환상적이다.
섬과 섬 사이를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
섬과 섬 사이를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

그가 타히티를 찾은 건 1960년 ‘바운티호의 반란’ 촬영을 위해서다. 영화는 타히티의 특산작물을 입수하기 위해 영국을 출항한 바운티호의 선장 블라이가 선원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자 1등 항해사 크리스찬이 주도해 선상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말론 브란도의 역할은 물론 1등 항해사였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작품 덕분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타히티는 118개 남짓한 섬으로 이뤄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중심이자 가장 큰 섬이다. 높은 산과 구름, 열대 우림과 양치식물로 뒤덮인 깊은 계곡, 맑은 강과 폭포,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평야를 보유한 꿈 같은 휴양지다.

영화 촬영은 타히티와 옆 섬 ‘무레아’(Moorea)라는 곳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촬영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인근을 돌아다니던 중, 말론 브란도는 ‘테티아로아’를 발견하게 된다. 타히티 섬에서 북쪽으로 약 30마일(48km) 거리에 위치해 있는 테티아로아는 1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지난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서전을 집필하기 위해 머물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섬에 ‘꽂힌’ 그는 1966년과 1967년에 섬을 통째로 사버린다. 1970년에는 이 섬에 12채의 방갈로, 주방으로 사용한 작은 오두막, 식당과 바가 전부인 작은 마을을 지었다. 재료는 모두 현지에서 조달한 코코넛 나무, 코폴라, 조개껍질을 사용했다. 그는 영화에 함께 출현했던 타히티 출신의 여배우 타리타와 결혼해 이 섬에 정착한다.

말론 브란도는 1973년 이곳에 친환경 리조트를 지어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04년까지 직접 운영했고, 타리타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사이먼이 ‘더 브란도’라는 이름으로 재단장해 그의 사망 10주기인 2014년 7월1일에 문을 열었다.

더 브란도 리조트는 2016년 미국 여행 매체 ‘트래블 앤 레저’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리조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만 봐도 고개가 끄떡여진다. 에메랄드 빛 바다, 하얀 백사장 및 터키색 산호초 군락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흠잡을 데 없다. 바다새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새들의 낙원’이라는 애칭도 보유하고 있다. 테티아로아 섬에는 투숙객과 직원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 세계적 명사들이 파파라치 걱정 없이 휴양을 즐기기 위해 주로 찾는다. 오바마도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뿐이다.

테티아로아의 ‘더 브란도’ 리조트
테티아로아의 ‘더 브란도’ 리조트
말론 브란도도 이렇게 즐겼을까
말론 브란도도 이렇게 즐겼을까
섬 안의 숲 속 산책.
섬 안의 숲 속 산책.
고독한 영혼의 영원한 안식처 테티아로아
고독한 영혼의 영원한 안식처 테티아로아

어느 철학자는 말론 브란도가 테티아로아로 들어간 것을 두고 “그는 하나의 섬이 됐다. 하나의 고독한 섬이 되었다"라고 말했단다. 테티아로아에서 그는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살았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9시에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해양농장, 태양열과 같은 친환경 관련 서적을 즐겨 읽었다. 밤이 되면 아무도 없는 해변을 나체로 걷거나 산책하며 해방감을 느꼈다. 섬과 섬 사이 수심이 5m도 안 돼 그곳에서 물고기도 잡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뛰어 놀았다. 고독하고 우울하고 허무했던 삶의 이면에 감춰진 순수하고 밝은 자아를 테티아로아에서 찾은 것 같다.

말론 브란도가 사망한 후 2005년에 리조트는 개발업체로 넘어갔는데, 다행히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그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돈벌이 보다는 환경을 배려한 혁신적인 리조트가 지어진다. 여느 고급 리조트과 달리 산호를 보존하기 위해 수상 방갈로를 세우지 않고, 전용 해변을 낀 비치빌라 객실 만을 운영하며, 식재료도 가급적 현지 섬에서 기른 것을 사용한다.

말론 브란도는 죽으면 테티아로아의 야자수 사이에 유골을 뿌려 달라고 유언했을 만큼 섬에 대한 애착이 컸다. 영화 촬영이 없을 때는 늘 이 섬으로 숨어들 듯 도망쳐 왔다. 그의 유언대로 유골은 가장 친했던 친구인 월리 콕스와 샘 길먼의 유골과 합쳐 테티아로아에 뿌려진다.

찬란한 인기와 명예의 그늘에서 여자, 약물, 알코올에 중독돼 허무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그야 말로 고독한 섬 같은 존재였지만, 오히려 고립된 섬에서 그는 자아를 되찾았다. 그의 영혼도 아마 테티아로아의 일부가 되어 친구들과 웃으며 섬과 섬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목걸이처럼 연결된 환초 섬이다
목걸이처럼 연결된 환초 섬이다

▦테티아로아 가는 법

테티아로아는 13개의 섬이 목걸이처럼 연결된 환초다. 더 브란도 리조트에는 서쪽 터틀비치에 22개, 남쪽 머메이드비치에 13개의 빌라가 있다. 머메이드 비치는 산호가 적어 주로 자녀가 있는 가족이 묵기에 좋다. 반면 서쪽 비치는 아름다운 해넘이와 환상적인 산호 군락이 있어 신혼여행객에게 적합하다. 에어타히티누이 항공이 도쿄 나리타공항에서 타히티의 파페에테공항까지 주 2회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약 13시간. 타히티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리조트 전용 비행기인 ‘에어 테티아로아’ 라운지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테티아로아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예상대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휴양 섬 전문여행사인 드림아일랜드에서 내놓은 테티아로아 3박+타히티 1박(4박6일) 상품 가격이 916만원부터다.

박재아 여행큐레이터ㆍ사진=드림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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