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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르반떼 타고 대관령에서 도깨비 될 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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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르반떼 타고 대관령에서 도깨비 될 뻔한 사연

입력
2017.01.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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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내린 이른 아침의 영동고속도로. 조두현 기자
폭설이 내린 이른 아침의 영동고속도로. 조두현 기자

아침 6시 강릉 주문진. 누가 그랬던가? 하루 중 가장 어두울 때는 해가 뜨기 바로 직전이라고. 누군가 일부러 까맣게 덧칠해놓은 것처럼 밖은 아직도 컴컴하고 고요했다. 바닥을 보니 눈은 오지 않았다. 전날 전국적인 폭설이 있을 것이란 보도에 내심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뭐, 기상청이 잘못 예측했나 보다.’ 역시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동물인가보다. 까맣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타고 온 마세라티 르반떼 S에 서둘러 올라 시동을 걸었다. 녀석은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신경질을 부리며 앙칼진 비명을 질렀다. 순간 동네의 강아지들이 화들짝 놀라 웅성거리며 짖기 시작했다. 고요 속의 외침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이때 난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영동고속도로의 대관령 터널을 지나자 다른 세상이었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마법을 부려놓은 듯 희뿌연 먼지 같은 눈이 사정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아직 차들이 다니기에 이른 시간인 데다 녹은 눈이 꽝꽝 다져져 도로는 얼음 바닥 그 자체였다. 문제는 내리막길이었다. 르반떼가 제아무리 네바퀴굴림이어도 윈터타이어를 끼고 있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시승차는 고성능 스포츠카에 주로 쓰이는 피렐리 P 제로(앞 265/40 R21, 뒤 295/35 R21)를 신고 있었다. 윈터타이어까진 아니지만, 비대칭 트레드로 접지력이 좋아 일단 내려가기로 했다.

마세라티의 네바퀴굴림 시스템인 Q4. 조두현 기자
마세라티의 네바퀴굴림 시스템인 Q4. 조두현 기자

중간 즈음 내려왔을까? 트랙션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마세라티의 네바퀴굴림 시스템인 Q4는 평소엔 뒷바퀴를 100% 굴리다 앞바퀴가 접지력을 잃으면 최대 50%까지 분배한다. 이때는 아마도 네 바퀴 모두가 순간적으로 접지력을 잃어버렸을 거로 생각한다. 접지력이 한 바퀴에라도 살아 있으면 모를까 내리막 빙판길에선 제 아무리 네바퀴굴림이라도 2톤이 넘는 거구를 땅에 온전히 붙이기 쉽지 않았다.

제동을 걸면 차가 중심을 잃고 돌 게 뻔했기에 패들시프트로 기어 단 수를 내리며 엔진 브레이크를 걸었다. 속도가 줄면서 차는 금세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도로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코너를 따라 스티어링휠을 오른쪽으로 살며시 돌리자 차 뒤가 살짝 미끄러지며 가드레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장면이 한 프레임씩 스쳐 지나갔다. 이러다 ‘영동고속도로 연쇄 추돌 사고’로 아침 뉴스에 나오겠다 싶어 스티어링휠을 왼쪽으로 조금 틀었다. 그러자 이번엔 중앙분리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속도마저 줄지 않았다. 심장 안엔 드러머가 들어앉아 좌심방 우심실을 세차게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이 넓은 평지에서 펼쳐지는 ‘윈터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같은 이벤트라면 오히려 그 짜릿함을 더 즐겼을 텐데….

정신을 차려야 했다. 기어 단 수를 2단까지 내리고 트랙션이 유지될 만큼 브레이크를 아주 살짝 밟아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Q4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차는 금방 자세를 바로잡고 앞을 보며 달렸다. 그때 바로 옆 갓길엔 앞범퍼가 떨어진 승용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정차해 있었다. 폭설 속에서 강원도를 벗어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리막길이 나올 때마다 심호흡을 들이마셔야 했지만 네 개의 바퀴는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안정을 찾았다.

마세라티 르반떼 S의 앞모습. 사나운 눈매가 인상적이다. 조두현 기자
마세라티 르반떼 S의 앞모습. 사나운 눈매가 인상적이다. 조두현 기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주차된 르반떼를 한참 쳐다봤다. ‘뭐 저리 사납게 생겼을까?’ 그날따라 유독 도깨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김신(공유)이 타고 나와서 더 그렇게 보이나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야수의 얼굴이다. 그릴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은 삼지창 엠블럼과 가늘고 길게 뜬 눈을 보고 있으면 이제 막 긴 잠에서 깨어나 굶주려 뭐라도 잡아먹을 기세다.

마세라티 르반떼의 엠블럼. 조두현 기자
마세라티 르반떼의 엠블럼. 조두현 기자

전날, 서울에서 강릉으로 넘어올 때까지만 해도 르반떼로 이러한 주행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르반떼는 덩치만 클 뿐 스포츠카에 가깝다. 지난 2011년 르반떼의 콘셉트카 쿠뱅이 처음 나왔을 때, 마세라티는 양산형 르반떼를 지프 그랜드 체로키와 플랫폼을 공유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잠재 고객과 딜러의 반대에 부딪혀 기블리 플랫폼에서 만들기로 했다. 대시보드와 차축까지의 비율(dash-to-axle ratio)이 길고 뒷자리가 널찍한 건(휠베이스 3,004㎜) 바로 이 덕분이다.

프레임이 없는 도어. SUV지만 쿠페의 스타일을 지향한다. 조두현 기자
프레임이 없는 도어. SUV지만 쿠페의 스타일을 지향한다. 조두현 기자

다시 말해 르반떼는 생긴 건 SUV지만 유전자는 스포츠 세단이다. 서스펜션 구조만 봐도 앞은 더블 위시본, 뒤는 5-링크로 스포츠 세단에서 주로 사용하는 세팅이다. 주행 모드에서도 스포티한 캐릭터는 드러난다. 스포츠 모드에서 공기저항력을 줄이기 위해 서스펜션은 약 3.5㎝ 낮아진다. 반대로 오프로드 모드에선 약 8.5㎝ 차고가 올라간다. 그런데 과연 이 차로 진정 오프로드를 달릴 운전자는 몇 명이나 될까 싶지만.

균형감 있는 뒷모습. 르반떼는 이 각도에서 가장 예쁘다. 조두현 기자
균형감 있는 뒷모습. 르반떼는 이 각도에서 가장 예쁘다. 조두현 기자

르반떼 S는 3.0ℓ V6 엔진으로 최고출력 430마력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마세라티의 모든 차가 그렇듯 스포츠 모드에선 날카롭고 웅장한 배기음과 함께 힘을 아끼지 않고 도로 위로 발산한다. ZF의 8단 자동 변속기는 운전의 즐거움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높은 엔진회전수를 붙들고 있다. 성난 이 차를 진정시키려면 스티어링휠 오른쪽에 붙어 있는 패들시프트를 ‘딸각’ 건드려주면 된다.

야수의 울부짖음. 르반떼 S의 배기음

시승차인 르반떼 S 럭셔리 패키지의 가격은 1억6,490만원이다. 21인치 휠, 드라이버 어시스턴스 팩 플러스, 파노라마 선루프, 앞뒤 열선 시트, 라디카 우드 트림 등이 기본으로 적용됐다. 여기에 에르메네질도 제냐 장식과 바우어스 앤 윌킨스(B&W) 오디오 시스템 등을 추가로 고를 수 있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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