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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대화 풀 때 특사 파견… 대부분 정보수장이 밀사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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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대화 풀 때 특사 파견… 대부분 정보수장이 밀사 역할

입력
2018.03.02 20: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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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땐 박지원 문화부 장관 파견

김만복 前국정원장 마지막 특사

남북은 과거에도 꽉 막힌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특사를 파견해왔다.

역대 정권에선 주로 정보기관장이 대북특사로 나섰다. 그래서 밀사(密使)인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 정권 하에선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3월과 5월 대북밀사로 파견됐다. 미중관계가 완화하고, 주한미군이 철수 압력을 넣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이후락 부장 방북 이후 남북은 7ㆍ4남북공동성명 합의를 이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5년 7월과 9월 박철언 안기부장 제2특보와 장세동 안기부장을 특사로 보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해서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에는 합의를 이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공동개최와 회담 성사에는 이르지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1990년 9월 서동권 당시 안기부장을 북으로 보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2000년 3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측근이었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을 특사로 명했다. 박 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논하고, 다음달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에 합의했다. 그 해 5월 임동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특사로 평양을 찾아 회담을 사전 조율했다. 임 원장은 2002년 4월과 이듬해 1월에도 남북관계 해소를 위해 방북했다.

대북특사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6자회담을 거부하는 북한을 설득하라는 특명을 받고 방북했다. 한 달 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했고, 그 해 9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담은 9ㆍ19성명이 채택됐다. 마지막 특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07년 8월 방북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다. 북한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속히 얼어붙은 상황에서 파견됐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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