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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하나된 국민'은 어디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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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하나된 국민'은 어디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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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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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의식은 '연평도 이전'과 '연평도 이후'로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 3월 천안함 폭침 때와 비길 바가 아니다. 단적인 장면이 지난주 국회에서 벌어졌다. 국회 국방위가 내년도 국방예산을 정부가 제출한 31조2,795억원보다 7,146억원 더 늘려 의결한 것이다. 상임위에서 예산이 증액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같은 규모의 국방부 요청을 야당의원들까지 군말없이 수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연평도 이후' 국민의식 큰 변화

사실 국방예산은 햇볕정책을 앞세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전년 대비 연 평균 8% 안팎으로 늘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증가세는 2009년 7.1%, 올해 3.6% 내년 5.8%로 크게 줄었다. 경제위기 극복과 4대강 사업 등에 순위가 밀린 데다 방만한 국방예산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젠 다르다. 최근 국방위의 의견도 예결위에서 걸러지겠지만 이전의 잣대로 손댈 분위기는 아니다. 빠듯한 살림에서 4대강과 복지 예산을 놓고 주판알 튕기던 정부와 정치권은 지혜가 필요한 또 하나의 숙제를 맞은 셈이다.

중기 재정운영계획까지 뒤흔드는 '연평도 이후'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층 결연한 대북인식과 치밀한 안보태세만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최강의 안보로 꼽은 '하나된 국민'을 만드는 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올해가 저물 때 서민들의 삶에 온기가 돌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한층 향상되며 우리의 자신감이 더욱 충만해지도록 하겠다"는 신년연설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집권 하반기 국정화두로 내세운 공정사회론을 끊임없이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몇 가지 지표와 추세는 실망스럽다. 우리 경제의 몸집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 이상으로 더욱 커지는데도 국민들이 손에 쥐는 돈의 총량은 거의 변화가 없고, 중산층 이하의 주머니는 되레 가벼워지는 추세가 개선되지 않아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분기보다 0.7% 늘어 연율로 올해 6% 성장을 예고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0.2%로, 지난해 1분기 이후 최저였다. 크기는 그대로인 파이에 대한 고소득층의 먹성을 감안하면 평균적 국민의 살림살이는 더 나빠졌다는 얘기다.

그럼 이런 구조는 나아지고 있을까.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점하는 중소기업과 벤처의 열악한 경영환경, 즉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고 혁신해보자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마련된'9ㆍ29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은 거래질서 확립부터 평가ㆍ점검에 이르는 야심적 작품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책은 실종됐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현장의 푸념과 냉소만 가득하다. 두 달 넘도록 현황과 실적을 챙기는 곳조차 분명치 않다.

더구나 재계는 G20 열기와 연평도 포연에 숨어 9ㆍ29 대책에 노골적인 반기를 들고 있다. 속보이는 '경제원리'를 들이대며 "규제를 강화하면 대ㆍ중소기업간 거래가 위축된다"고 도발도 서슴지 않는다. 안철수씨가 최근 한 강연에서 한국경제의 조로(早老)와 벤처 실종을 우려하며 "국내에서 지난 30년 동안 창업한 기업 중 대기업에 납품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중소ㆍ벤처기업은 없다"고 개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공정사회 고삐 놓으면 길 잃어

협상의 상도와 이익의 균형을 깨트린 채 국회비준 무대에 나타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계층적 이해를 담고 있다. 자산은 사람뿐인 우리 경제의 특성상 개방과 도전은 숙명이라고 해도 제조업과 수출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등 이익과 손실의 귀속과 배분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글로벌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연평도 이후' 국민들은 평화를 지키는 방법과 비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나된 국민을 말하는 정부도 길을 잘 찾아야 한다. 안보관리에서 치명적 허점을 드러낸 정부가 공정한 경제관리에서마저 길을 잃으면 설 자리가 없다. 전쟁이 없다고 평화는 아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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