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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진영 구도만 굳힌 사드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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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진영 구도만 굳힌 사드외교

입력
2016.09.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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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며칠 새 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 등 주변 4강과의 양자회담을 포함해 몇 차례의 다자회담을 숨가쁘게 소화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외교는 한미 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결정한 뒤 이를 둘러싼 논란이 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관련국 정상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라 주목도가 높았다. ‘사드외교’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예상대로 사드외교를 성공작으로 평가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ㆍ러시아 정상을 만나 사드가 북한 핵ㆍ미사일에 대한 방어용이고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강조했고, 이에 대해 동의를 얻진 못했지만 솔직한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특히 중국이 한중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원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을 최대 성과로 꼽는 듯하다. 한중 정상회담 당시 사드 관련 논의의 분위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청와대 측은 “두 정상이 한중관계 발전이 역사적 대세라는 점에 공감했다”고 비켜갔다. 추가적인 상황 악화는 없을 것임을 은연중에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사드외교에 대한 청와대의 호의적인 자체평가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박 대통령이 거론한 ‘조건부 사드 배치론’이 하책 중의 하책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없어지면 사드 배치도 필요없다”는 이 논리는 사드가 북핵 방어용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 수 있고, 중국에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영향력 행사 요구일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이를 북핵에 대한 중국 책임론의 다른 표현으로, 따라서 사드 배치를 강행하기 위한 명분쌓기용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당신들이 북한을 압박하든 설득하든 해서 핵을 포기하게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셈이고, 지금과 같은 진영간 갈등 상황에서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할 리 만무한데도 이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사드를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일환으로 보는 중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논리이기도 한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차용해 공론화함으로써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박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손을 든 셈이 됐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박 대통령의 한미중 3자 협의체 제안을 철저히 외면하는 이유를 미뤄짐작할 만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의 국가전략을 굴기(堀起ㆍ우뚝 섬)로 설정하고 미국이 아시아ㆍ태평양 균형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한반도 주변에선 ‘미일 대 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뚜렷하다.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외교에서 양측이 정면충돌하는 외교안보 갈등 현안 중 하나인 사드 문제에서 ‘한미일 대 중러’ 구도를 굳힌 것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 강행으로 사드 문제에서 중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중국은 다소간의 곤혹스러움에도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기존 주장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까지를 포함한 미국과의 파워게임에서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자산가치를 고려할 공산이 크다.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모양새는 취하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바람대로 북한의 붕괴를 원할 가능성은 손톱만큼도 없다. 경우에 따라선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다. 저출산ㆍ고령화나 고용없는 성장에 대비한 재정 투입 여력도 부족한 판에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사드 배치 확대, 패트리어트 미사일 대량 구입, 핵잠수함 및 이지스함 도입, 글로벌 호크(고고도 무인정찰기) 구매 등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붓자는 주장에 불이 붙을 테니 말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내내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망가진 결과 경제적ㆍ사회적 안보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게 됐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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