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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인류학, 고음악과 원전연주를 서울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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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인류학, 고음악과 원전연주를 서울에서 만나다

입력
2017.08.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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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디 사발은 16~18세기 유럽의 현악기인 비올을 현대로 소환했다. 다리 사이에 끼워 연주하는, 오늘날 첼로의 전신인 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의 대가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조르디 사발은 16~18세기 유럽의 현악기인 비올을 현대로 소환했다. 다리 사이에 끼워 연주하는, 오늘날 첼로의 전신인 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의 대가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오늘날 가장 친숙한 악기 중 하나인 피아노의 정확한 이름은 ‘피아노 포르테’다. 연주자가 음량을 여리게(피아노) 또는 크게(포르테) 조절할 수 있는 건반 악기다. 피아노 이전의 건반 악기인 하프시코드는 건반 뒤에 연결된 현을 뜯어 소리를 냈기에 미묘한 음량 세기를 표현할 수 없었다.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도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전 현악기는 쇠줄 대신 동물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을 사용했다. 현악기의 전신으로 불리는 ‘비올’은 현이 4개인 현재 악기와 달리 줄이 5~7개였다. 바이올린이 등장하면서 비올은 17세기부터 인기를 잃어 갔다.

쇠줄 대신 거트현을 쓰고, 피아노 대신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공연을 연주를 요즘 한국에서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현대 악기가 아닌, 음악이 작곡된 수백년 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연주자들의 시도 덕분이다.

당대 악기와 연주법을 이용한 연주를 ‘고음악’ 또는 ‘원전 연주’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중세시대부터 바로크까지 음악을 지칭한다. 9월 7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연주회를 여는 조르디 사발(76)은 음악의 인류학자로 불리는 고음악 연주자다. 사발은 다리 사이에 끼워 연주해 첼로와 비슷하던 ‘비올라 다 감바’를 현대로 소환했다. 17세기 악기와 고음악의 매력을 전달하는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1991)에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했다. 사발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전해 내려오는 켈트 음악과 영국 비올 음악의 연결 고리를 보여줄 예정이다.

당대 작곡가의 의도를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연주자들은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르디 사발(왼쪽)이 오늘날 현악기의 전신인 비올을 연주하는 모습.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당대 작곡가의 의도를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연주자들은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르디 사발(왼쪽)이 오늘날 현악기의 전신인 비올을 연주하는 모습.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고음악은 20세기 들어 나타난 새로운 조류다. 이지영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 과장은 “원전 연주를 연구하는 이들은 작곡가들이 음악을 만든 시대의 연주는 어땠을 지를 탐구하려 오래된 문서나 자료, 악기를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의 목적은 작곡가의 의도를 생생히 구현하는 것이다.

지난 6월 한국을 찾은 벨기에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도 같은 이유로 원전연주를 중시한다. 그가 예술 감독을 맡고 있는 프랑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18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을 당대의 악기로 연주한다. 헤레베헤는 “요즘 현악기 연주자들은 음을 최대한 일정하게 내고 많은 비브라토를 사용해 연주하는 반면,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거트현과 고전시대의 활을 사용한다”며 “시대 악기로 하는 연주는 청중에게 더 생생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클리리넷의 여제로 불리는 자비네 마이어는 “모차르트가 곡을 만들 때 생각한 부분을 살리기 위해” 18세기 이후 자취를 감춘 ‘바셋 클라리넷’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존재하기 전 탄생한 작품을 연주할 때 자신의 피아노를 직접 들고 공연장에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고음악은 대중적 장르는 아니지만, 과거의 소리를 재현하려는 연주자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기획공연 ‘우리 시대의 바로크’에서 첼리스트 이정란은 거트현을 장착한 첼로를 연주했다. 플루티스트 조성현은 나무로 만든 플루트를 연주했다.

테너 박승희가 예술감독을 맡은 ‘바흐솔리스텐서울’은 바로크 시대의 연주를 되살리려 2005년 창단한 고음악 연주단체다. 박 예술감독은 “고음악 시대의 악기와 창법은 요즘 연주하는 현대 악기에 비해 부드럽고 섬세하기 때문에 너무 큰 공연장에서는 전달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공연장이나 울림이 좋은 곳에서 연주할 때 장점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바흐솔리스텐서울은 9월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초기 개척자인 작곡가 몬테베르디(1567~1643) 탄생 450주년 기념음악회를 연다.

박 예술감독에게 고음악의 매력을 물었다. “바로크 음악은 종교 음악 이후에 등장한 세속 음악으로, 인간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려 한 첫 시도였습니다. 낭만주의에 비해 정형화된 틀이 있지만, 그 안에서 인간 감정의 정수를 연주하는 느낌이 전해질 겁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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