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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디’ 권하는 사회… 아빠 수유실은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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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디’ 권하는 사회… 아빠 수유실은 어디 있나요

입력
2016.04.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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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참여 남성 느는데…출입금지 안내문에 발길 돌려

남자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 없어 변기 위에서 아기와 진땀

아빠도 힘들어요.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빠도 힘들어요. 한국일보 자료사진

결혼 전 아이라면 질색을 하던 회사원 안준모(34)씨는 2014년 초 딸 세하를 얻은 뒤 ‘딸 바보’가 됐다. 3교대 근무로 바쁜 아내를 대신해 주말마다 딸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는 것은 안씨의 소소한 즐거움. 하지만 최근 딸을 데리고 서울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그는 진땀을 빼야 했다. 대변을 본 딸이 칭얼거리자 급히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남자화장실을 이리저리 찾아 다녔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안씨는 결국 좁은 화장실 변기 위에 울음을 그치지 않는 딸을 세워 둔 채 기저귀를 갈 수밖에 없었다. 안씨는 “기저귀교환대 설치 같은 작은 배려가 아빠들이 육아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첫걸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녀를 양육하는 남성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룬 방송이 화제가 되고 정부도 아빠 육아를 적극 권장하면서 이제 거리에서 아기띠를 맨 남성을 찾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친구 같은 아빠를 뜻하는 ‘프렌디(friend와 daddy의 합성어)’나 ‘육아빠(육아하는 아빠의 줄임말)’ 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남성 육아 바람은 거세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2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1,38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78명)의 1.5배나 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 2,3개에 그쳤던 백화점 문화센터의 아빠 관련 강좌도 10개 이상으로 늘었다. 남성의 육아 참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된 셈이다.

그러나 자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아빠들은 갖은 돌발 상황 앞에 당황하기 일쑤다. 대부분의 육아 편의시설이 엄마 위주로 만들어져 있는 탓이다.

화장실 문제는 아빠들이 외출 시 부딪치는 가장 큰 벽이다. 주요 시설의 여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는 물론, 유아 전용 소변기까지 갖춰졌지만, 교환대를 구비한 남자 화장실을 찾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행정자치부(당시 안전행정부)는 2010년 남성 육아를 지원할 목적으로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권고사항이라, 신축 및 증·개축된 일부 건물의 남성 화장실에서만 기저귀 교환대를 볼 수 있는 정도다.

화장실의 장벽을 가까스로 넘긴다 해도 수유실의 벽이 가로막고 있다. 기저귀 교환대는 ‘없어서’ 이용이 불가한 반면, 수유실은 ‘있어도’ 쓸 수 없다. 사실상 금남(禁男)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몸이 아픈 아내를 대신해 세살배기 아들과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마트 키즈카페를 찾은 배정환(35)씨는 이유식을 데우려 수유실을 방문했지만 입구 앞에 부착된 남성 출입금지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다른 아이 엄마에게 부탁해 겨우 이유식을 먹이기까지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배씨는 “허술한 칸막이 등 거의 모든 수유실이 애초 아빠들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져 남녀 모두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며 “수유실은 모유수유 만을 위한 장소가 아닌만큼 부모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남성들의 수유실 출입은 몇 해 전부터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 이어진 해묵은 논쟁이다. 모자보건법 10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의 건강을 위해 수유시설 설치를 지원한다’고 나와 있으나 출입 자격에 대한 언급은 없어 현장에서 얼굴을 붉히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수유실 출입 등 남성 육아와 관련한 민원이 꾸준히 늘고 있어 시설물 관리 규정에 미비점은 없는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빠 육아시설 부족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여성들에게 양육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장은 “남성이 아이를 돌보기가 힘든 여건이 지속될 경우 ‘육아는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빠 육아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가족이 함께 하는 공동 육아 환경을 서둘러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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