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주필

등록 : 2015.01.29 17:26
수정 : 2015.01.30 15:26

[황영식의 세상만사] 과잉소통은 불통이다

등록 : 2015.01.29 17:26
수정 : 2015.01.30 15:26

연말정산 파문 지나치게 커져서 걱정

증세 논의에 솔직하지 못한 정부 책임

각자의 각오 없인 부자증세도 아득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티타임을 가지며 국무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처음 연말정산 파동이 시작됐을 때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방식의 개정이 추상적 표준치를 기준으로 설계될 때와는 달리 구체적 적용 단계에서는 정책목표에 어긋나는 사례가 나타나고, 그에 따른 합리적 불만이 제기될 만했다. 이런 불만은 제도개편에 으레 뒤따르는 문제여서, 실제 적용과정에서 미조정으로 대응하면 됐다. 설사 불충분하더라도 적극적 해명과 국민 설득이 순리였다.

그러나 애초의 합리적 불만에 실질적 ‘부자 증세’ 가능성에 대한 중ㆍ고소득층의 반발이 슬쩍 편승하고, 다양한 동기에서 비롯한 온갖 정책비판이 결합하는 순간 정부의 합리적 대응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었다. 거대한 민심의 회오리 앞에 정부와 여당은 크게 놀라 곧바로 항복했다. 당정은 부랴부랴 자녀세액공제 금액을 늘리고, 출생ㆍ입양 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되살리고, 독신근로자 표준세액 공제액을 올리고 연금보험료 공제(12%)도 확대하는 등의 보완책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내기로 했다. 또 개정 세법을 2014년 소득 귀속분에 소급해 적용하기로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9월 행정자치부(당시 안전행정부)가 입법 예고한 지방세법 개정방향에 따른 주민세(개인ㆍ법인 균등할분) 및 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을 적극 추진하겠다던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바로 이튿날 “국회 협조 없이 지방세법 개정 없다”는 하나마나 한 소리로 의지를 희석시켰다. 더욱이 지난해 8월부터 면밀한 검토에 들어가 몇 가지 방안에 대한 모의검증까지 마친 건강보험료 개편에 대해서도 그제 갑작스레 보류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정부가 이미 내던진 군인ㆍ사학연금 개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당장 4월까지 마무리하겠다던 공무원연금 개혁까지도 위태로워졌다. 기우로 끝나길 빌면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연말정산 역풍을 맞은 정부의 정책 동요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치달은 데는 누구보다 정부 책임이 크다. 우선 솔직하지 못했다.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게 소득불균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한 모처럼의 ‘누진성’ 강화책이더라도 중간층 이하에서 불합리한 부담 증가 사례가 있을 수 있음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구제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랬다면 중산층 이상에서 가구 구성이나 소득처분 형태의 차이에 따라 빚어진 반발, 심지어 연 1억원 이상의 급여 소득자들까지 동참한 조세저항의 위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정부 자체 모의실험 결과로도 8,600억원 정도의 세수증대 효과라는 실질적 증세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잘못이 크다. 바로 여기서 ‘증세 없는 복지 증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헛된 약속을 껍데기라도 지키겠다는 정책의 불합리성이 모습을 나타낸다. 지방세 인상이나 건보료 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의 소극성이 최근의 박 대통령 지지율 급감이라는 정치적 배경에서 기인한다는 관측이 일반화할 수 있었다. 민주정치와 대중영합 정치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오랜 불통(不通)으로 호가 난 정부의 돌연한 과잉소통이 어리둥절하다. 소통 또한 지나치면 미치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재빨리 털어내야 할 자세다.

물론 야당과 언론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연말정산 파동이 정부의 초기대응 잘못에 덧붙여 야당의 무책임한 ‘13월의 세금폭탄’ 주장과 평소 성향을 가릴 것 없이 입을 맞춘 언론의 난타가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은근히 언론인의 고액 연봉 실태까지 거론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그런 비뚤어진 주장에는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급여 실태를 들어 떳떳이 항변할 수 있는 언론인이 많지만, 연말정산 파문의 속살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점에서는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있다. 부분 보완에도 불구하고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의 전환이라는 제도 변화의 실체는 살아 남았다. 아울러 복지 예산이 연 10%의 증가율을 보이는 반면 경제성장률은 연 3%에 불과해 실질적 증세가 불가피하고, 국민 저마다의 부담 증가 각오 없이는 ‘부자 증세’ 또한 요원하다는 현실인식이 싹텄다. 세상만사의 빛과 그림자가 새삼스럽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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