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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커버스토리 - 송광사 불일암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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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커버스토리 - 송광사 불일암을 걷다

입력
2010.05.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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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암자 곳곳에 법정 스님의 숨결 배어…

송광사 주차장.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불일암을 찾았다. 차에서 내리자 노란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황사가 부는가 하늘을 올려다 보니 솔숲에서 불어온 바람이다. 휙하니 나뭇가지를 흔들어놓은 바람을 타고 노란 송화가루가 분분이 퍼져 나왔다. 소나무 아래에 서서 다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 또 한 차례 솔가지가 흔들렸고 얼굴 위로 노란 가루가 흩어진다. 큰 숨으로 들이마셨다. 고소한 송화다식을 숨으로 들이켰다.

송광사 입구에서 입장권을 산 후 개찰을 하고 있는 처사께 불일암 가는 길을 여쭸다. 불일암은 얼마전 입적한 법정 스님이 1975년부터 17년간 머물며 정진했던 곳이다.

계곡의 물길은 봄인데도 제법 넉넉했다. 올 겨울과 봄 유독 눈비가 많았다. 조계산의 초록도 한결 생기가 넘친다. 입구에서 일러준 두번째 다리를 만났다. 지금까지의 길이 잘 다져진 매끈한 흙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제멋대로 생긴 울퉁불퉁 산길이다. 서너 걸음 걸으니 처사님이 얘기했던 '등산로 없슴' 팻말이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등산로가 없는 길, 길이 아닌 길 그 끝에 불일암이 있다.

길은 고즈넉하다. 아무도 지나지 않아 오로지 자신의 호흡 소리에만 집중한다. 나무의 푸른 기운들이 둥실 떠다니는 것 같은 짙은 숲 속. 이 길을 걸었을 스님을 생각한다. 볼품없는 나뭇가지에도, 땅 위로 툭 불거진 뿌리에도 스님의 장삼자락이 스쳤을 것이다.

편백나무 깊은 숲을 이룬 곳에 이정표가 섰다. 불일암을 처음 가리키는 이정표다. 새로 설치된 듯 깨끗한 이정표 옆에 맨 나무 빛의 이정표가 또 하나 서있다. 불일암을 가리키는'ㅂ'자와 연꽃 문양만 새겨진 나무토막이다. 이정표 위에 있다던 연꽃모양의 장식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어리석은 중생이 혼자서만 보겠다고 떼어갔나 보다.

곧게 뻗은 기상의 편백숲을 지난다. 편백숲을 지나면 이번엔 대나무숲이다. 대숲의 그늘은 더욱 푸르렀다. 숲은 불일암 직전에 다시 더 가는 대나무인 시누대숲으로 바뀐다. 편백에서 대나무로, 다시 시누대로 이어진 숲길. 모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다. 나무는 점점 가늘어 졌지만 그 간격은 더 조밀해진다. 편백숲이 걸러내고 대숲과 시누대숲이 또 거른, 한 없이 가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일암을 스친다. 그 바람에 불일암 처마에 걸린 작은 풍경이 흔들렸다.

단청은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암자 불일암. 요사채와 해우소, 그리고 스님이 머물면서 정진했던 건물 등으로 단출했다. 사찰엔 대신 색색의 꽃들이 만개했다. 하얗거나 핑크빛 혹은 짙은 자줏빛으로 피어난 철쭉들이 단청을 대신했다.

불일암 앞엔 그 유명한 '빠삐용 의자'가 놓여있다. 법정 스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의자로 매스컴에 알려져 유명세를 탄 의자다. 옆에 붙은 사진을 보니 스님이 이 의자에 앉아 앞쪽 넉넉한 산세를 바라보고 계신다. 지금 그 산자락으론 신록이 짙어가고 있다. 초록의 농담이 리드미컬했다. 불일암 문 위엔 '살어리 살어리랏다'로 시작하는 시구가 걸려있다. 스님은 청산에 깃들어서도 또 다른 청산을 바라보고 계셨다.

불일암 앞 스님이 35년 전 직접 심으셨다는 후박나무엔 얼마 전 49재를 마친 스님의 유골 일부가 흩뿌려졌다. 불일암을 찾는 많은 이들이 스님이 깃든 그 나무에 땅을 향해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린다.

건물 바로 옆 약수터에 암자를 찾는 이들을 위해 물주전자와 사탕 한 소쿠리가 놓여있다. 한 잔의 물로 갈증이 사라졌고 사탕 한 알로 입 안이 달콤해졌다. 어리석은 중생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어찌 다 깨우칠 수 있을까. 그저 물 한잔, 사탕 한 알에서 행복을 느낄 뿐이다.

순천=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송광사, 지눌 등 16국사 배출… 문화재 32점 보존

불일암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송광사를 들렸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조계종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보조국사 진각국사 등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대사찰이다. 송광사의 이름 높은 스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지눌이다.

1190년 지눌 스님은 불교 쇄신 운동인 정혜결사 운동을 이곳 송광사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해 이후 자신을 포함한 16국사를 이 절에서 배출하게 하는 등 수행도량으로서 기반을 닦았다.

사찰 입구 물을 가득 담은 저수지에는 한여름 연꽃이 뒤덮듯 연등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주렁주렁 매달린 연등은 정한 물 속에서 또 한번 제 모습을 비춰낸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바로 앞에서 우화각을 마주하게 된다. 우화각은 능허교라는 다리와 한 묶음으로 봐야 한다. 능허교는 무지개 다리다. 아래 가운데 부분을 19개의 장대석으로 짜 올려 반원형의 아름다운 홍예를 이루고 있다. 이 우화각과 능허교가 맑은 계곡물에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정취는 송광사 풍경의 압권이다. 맑은 계곡물 속엔 푸른 하늘과 한창 물이 오른 신록이 풍덩 빠져있다.

송광사의 많은 건물들이 한국전쟁 통에 불탔지만 16국사의 영정을 모시는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고종제서 등 국보 3점을 포함해 32점의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쌀 7가마 분량의 밥(4,000인분)을 담아둘 수 있다는 대형 밥통 '비사리구시'도 볼 만하다.

송광사에서 빠져 나와 천자암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랐다. 차도가 놓여있지만 그 경사가 가파르다. 차라리 걸어 오르는 게 속 편하다. 때론 속 편한 게 몸 편한 것 보다 훨씬 낫다. 차도를 지나 숲 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초록의 숲이 부스럭거린다. 다람쥐 서너 마리가 돌아다니며 내는 소리다. 가을엔 도토리를 주워 먹을 텐데 봄엔 뭘 주워 먹을까.

마침내 도착한 천자암. 건물은 그리 볼 게 없지만 두 그루의 곱향나무.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다. 그간 올라옴의 수고가 싹 사라진다. 조계산의 정기를 그대로 말아올린 신령스러운 두 그루의 곱향나무. 가지를 휘감으며 800년을 자랐다는 나무다. 두 마리의 용이 솟구쳐 오르는 듯한 나무의 모습이 영험스럽다. 귀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위용이 대단하다. 조계산에서 수도하던 보조국사와 제자가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자랐다고 전해진다. 천연기념물 88호인 이 나무에선 길고 긴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순천=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숨은 나'를 찾으러 숨은 암자로 떠나보세요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지 1,700년이 되어간다. 오랜 시간 우리 산하와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믿음이다. 우리 산수의 정점엔 꼭 사찰이 들어앉았다.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려 한국만의 독특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풍경들이다.

부처님오신날이다. 일년 중 사찰이 가장 붐비는 때이다. 시끌벅적한 대찰 보다는 산 속에 숨은 암자로의 호젓한 나들이를 추천한다. 암자로 가는 숲길에서 꽉 찬 머리를 비우고 삿된 욕망을 버릴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여행이 또 있겠는가.

합천 해인사 백련암

경남 합천 해인사는 고승들의 숨결과 발자취가 고스란히 밴 1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 중 백련암은 가야산의 여러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암자다. 매화산을 비롯한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시야가 탁 트였다. 백련암은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라 일컫는 기암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고, 그 기암들 사이에 아름다운 노송들이 자라고 있어 가야산 제일의 절승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백련암은 성철 스님이 말년에 머물던 곳이다. 성철에 앞서 일제 강점기에는 시인 서정주, 소설가 김동리가 문학을 공부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접했다. 절집에 높게 드리운 담은 성을 연상케 한다. 속세와 절연한 스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지금 백련암은 꽃사태다. 철쭉이 그 높은 담벼락에 꽃칠을 해댔다. 백련암 원통전 앞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우뚝 서있다. 부처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불면석이라 부른다.

양산 통도사 극락암

통도사를 지나 북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있다. 차로 가면야 금방 닿지만 통도사를 지나 걸으면 한 시간 가량 걸린다. 1332년 고려 충혜왕 2년에 창건됐다. 주법당인 극락암을 비롯 연수당 정수보각 조사각 수세전 영월루 삼소굴 여시문 등이 있다.

극락암의 여여문과 영축산 정상을 일직선으로 바라보면 암자의 지붕과 대숲, 소나무 군락, 기암 연봉들이 차례로 중첩되면서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완벽한 풍경 한 폭을 펼쳐낸다. 극락암 앞마당에는 극락영지라는 작은 못이 있고 그 못 위로는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구름다리 위에 있으면 말 그대로 극락 위에 떠있는 느낌이다. 통도팔경 중 하나가 극락영지에 비친 영축산의 모습이라고 한다. 연못 옆 한 그루의 늙은 벚나무도 일품이다.

해남 달마산 도솔암

전남 해남 땅끝엔 땅끝 절 미황사가 있다. 미황사가 깃든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 높이가 489m.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릉들이 쭉 늘어섰다. 그 산 가장 남쪽 끄트머리 암벽 위에 새집처럼 들어앉은 암자가 도솔암이다. 땅끝에서 솟아오른 삐죽한 봉우리에 앉은, 하늘 귀퉁이에 붙은 암자다. 도솔암에서는 해남 아래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땅끝이고 오른쪽으로는 진도 왼쪽은 완도다.

미황사 등에서 올라 달마산 산행을 통해 도솔암에 이를 수 있지만 차로도 가까이 갈 수 있다. 송지면 마봉리에서 도솔암 이정표를 따라 임도길로 오른다. 길 끝에 주차한 뒤 능선을 타고 30분 가량 더 걸어 오르면 도솔암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260여 명의 학인 스님들이 공부하는 4년제 승가대학, 속세로 따지면 여승들만을 위한 여자대학인 셈이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 한 신승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진평왕 30년(608년) 원광국사에 의해 중창됐다. 운문사는 고려 때 일연이 머무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운문사 대웅보전 뒤로 올려다 보이는, 거대한 암벽에 제비집처럼 붙은 암자가 북대암이다. 북대암 마당은 운문사를 가장 잘 내려다 보는 전망대다. 남쪽의 운문산, 북동쪽의 호거산, 서쪽의 억산과 장군봉이 이룬 높고 낮은 겹겹의 높고 깊은 산줄기가 꽃잎처럼 감싸 안은 형국이라서 운문사를 연꽃의 화심(花心)에 비유하곤 한다. 북대암에서 내려다보면 이 화심의 연유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묘적암

<삼국유사>가 기록하기를 붉은 천에 싸인 바위 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 네 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신라 진평왕이 몸소 찾아와 예를 올리고 대승사를 창건했다.

문경 대승사에 딸린 윤필암은 전통 암자라기보다 펜션같이 예쁜, 약간은 현대화한 사찰이다. 관음전 앞마당을 지나 벼랑에 서 있는 사불전에는 불상이 따로 없다. 커다란 유리창을 사불바위 쪽으로 냈다. 창밖 사불바위를 모신 법당이다. 법당 안에 들어가 허리를 굽히면 사불바위를 우러를 수 있다. 사불바위에서 바라보면 윤필암을 감싼 산세가 참으로 아늑하다. 윤필암은 현재 20여명의 여승들이 수도하고 있는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윤필암에서 인근의 묘적암으로 오르는 길도 호젓해 좋다. 주변의 숲은 깊고 나무들은 높다.

변산 월명암

내변산 깊숙한 산속에 들어앉은 월명암은 692년(신라 신문왕 12년)에 창건됐다는 고찰이다. 얼마 전까지 당우 하나만 있던 소박한 절집이었는데 불사를 통해 여러 전각이 들어서 제법 규모가 커졌다. 이 암자는 신라 때 고승인 부설거사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부설거사는 647년 서라벌에서 태어나 원효 의상과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전국 명산 대천을 순례하다가 김제의 만경뜰에 도착했을 때다. 신심이 깊은 불교 집안의 한 처자가 스님을 연모했다. 처자는 스님을 붙잡고 부부의 연을 맺기를 간청했다. 처자는 죽기를 각오한 채 매달렸고 부모도 읍소했다. 부설은 처자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선택했고 환속해 아들과 딸을 낳고 10년을 속세에서 살았다. 어느 날 부설은 이제 수도를 해야겠다며 가족과 작별을 고했고 지금의 월명암 터에 암자를 짓고 일념정진에 매달렸다.

■ Q 삼보사찰은? A '승보' 송광사·'법보' 해인사·'불보' 통도사

불일암을 품고 있는 송광사는 우리 사찰을 대표하는 삼보사찰중 하나라고 한다. 삼보란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보물이자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의 대상이다. 중생을 인도하는 석가모니가 불보(佛寶)이고, 부처가 깨달은 진리를 설명한 불법이 법보(法寶)이고, 부처의 뜻을 배우고 수행하는 스님들이 승보(僧寶)다.

송광사는 지눌 이후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고찰로 한국 전통 불교의 승맥을 이어왔기에 승보사찰로 불리었다.

법보사찰은 팔만대장경을 지니고 있는 경남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다. 뾰족한 기암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야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해인사는 조선 태조 7년에 팔만대장경을 품는다. 고려 때 이름 모를 판각공들이 한 획 한 획 새겨 넣은 평화의 기원장이다. 불법의 정수가 새겨진 대장경이 강화도에서 새로운 자리인 해인사로 옮겨진 것이다. 이때부터 해인사는 법보사찰이란 명성을 얻는다.

나머지 불보사찰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 영축산 자락의 통도사다. 56동 580여 칸에 달하는 본사와 19개의 암자를 거느린 한국 최대 규모의 절이다. 이 절의 이름은 '통만법 도중생(通萬法 度衆生)'에서 나왔다. 모든 진리에 통달해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다.

통도사 대웅전은 국보 290호다. 통도사 대웅전엔 불상이 없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이기에 부처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통도사 대웅전의 특이한 점은 사방에 서로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있다. 동으로는 대웅전, 서로는 대방광전, 남으로는 금강계단, 북으로는 적멸보궁이라 써있다.

통도사는 또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적멸보궁은 열반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들이다. 적멸보궁의 적멸(寂滅)이란 열반(涅槃ㆍnirvana)을 뜻하는 말이다. 통도사 외에 강원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 평창의 오대산 상원사,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 등이 적멸보궁이다. 이들 사찰의 불단에도 불상이 없다. 대신 불단엔 빈 방석만 놓여있다. 적멸보궁은 부처를 직접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불단의 빈 공간에서 부처의 뜻을 스스로 헤아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송광사 불일암

● 서울에서 순천 송광사까지는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장성JC에서 고창담양고속도로로 갈아타고는 다시 창평JC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주암IC에서 빠져 나온다. 외서 벌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왼편으로 송광사 들어가는 진입로를 만난다.

● 불일암은 송광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야 한다. 물길을 건너는 청량각 앞에서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의 길로 걸어 오른다. 다시 물길을 만나 돌다리를 만나는데 이때도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 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간다. 솔숲과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오솔길 삼거리에서 불일암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불일암까지 30~40분 가량 걸린다. 송광사 (061)755-0107

● 천자암은 송광사 주차장에서 나와 벌교방향으로 가다 송광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 이읍리에서 천자암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들어간다. 마을을 지나 임도를 따라 계속 진입하다 보면 천자암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암자까지 차도가 놓여있으나 경사가 급해 위험하니 그냥 걸어 오르는 게 낫다. 주차장에서 천자암까지는 30분 가량 걸린다. 천자암 (061)754-3708

● 송광사 앞에 식당을 겸하는 여관이나 민박집들이 많이 있다. 송광사와 인근한 낙안읍성에서의 하룻밤도 추천할 만하다. 전통 초가집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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