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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브렉시트와 극단주의의 위험

입력
2016.07.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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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런던에서 열린 영국 런던에서 열린 브렉시트 결정 철회 집회에서 한 시위자가 '영국은 후회한다'는 문구와 함께 브렉시트를 선동한 정치인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있다. 런던=로이터 뉴시스
지난 2일 런던에서 열린 영국 런던에서 열린 브렉시트 결정 철회 집회에서 한 시위자가 '영국은 후회한다'는 문구와 함께 브렉시트를 선동한 정치인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있다. 런던=로이터 뉴시스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즉 브렉시트는 이를 선동하던 사람들조차 현실화될 거로 생각하지 못한 ‘사고(事故) 같은 사건(事件)’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우선 고령층과 저학력자들의 무지가 영국을 곤경에 몰아넣었다며, 우매한 다수 군중에 좌우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결함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소수 엘리트가 개별 국가에 간섭하며 부당하게 세금을 걷어가는 EU 체제에 대한 분노라는 해석이다. 이들은 EU 존재 자체가 이상주의자들의 성급한 구상이라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 다 타당한 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둘 다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우선 브렉시트를 민주주의 원칙의 근본적 결함이 드러난 사건으로 매도하는 것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극단주의 정치인과 언론의 책임을 감출 위험이 있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빠르게 세계화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일을 모든 유권자가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부분 유권자는 유용하고 정확한 정보를 직접 구하고 일일이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걸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현상을 ‘합리적 무지’라고 부르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의제가 존재한다. 유권자를 대표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정치인을 선출하고, 언론은 그 정치인을 유권자 대신 감시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민주주의 체제가 올바로 작동한다. 그런데 영국의 많은 정치인과 언론은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거꾸로 행동했다.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임금은 수십년째 제자리인 자신의 처지가 무엇 때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영국 저학력 계층에게 극우 정치인들은 ‘이민자가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EU는 이민자가 우리 마을로 몰려드는 걸 조장하고 있다’고 선동했다. 평소 글로벌 자본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EU가 그 대리인이라 못마땅하게 여겨온 극좌 정치인들도 극우파의 왜곡된 EU 비판을 모른 척 내버려두거나 동조했다. 이념적 편향에 사로잡힌 일부 언론은 극우 극좌의 왜곡된 캠페인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기는커녕 더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선동 정치와 외눈박이 언론이 민주주의 작동체계를 마비시킨 것이다. 브렉시트를 선동해 차기 총리를 꿈꾸다 결국 여론의 역풍에 총리의 꿈을 접은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극우성향 기자 출신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브렉시트 혼란의 책임을 EU에게 지우며, 해체를 주장하는 태도 역시 극우 민족주의자나 극좌 반세계화론자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하나의 질서 속에 공존하는 ‘제국’은 인류역사에 늘 나타나던 보편적 지배체제이며, 오히려 민족국가야말로 최근에 발명된 예외적 현상이다. 이스라엘 출신 역사가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제국은 지난 2,5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었다”고 단언한다. EU가 문제가 많은 체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교훈 삼아 영구평화를 목표로 차근차근 추진해온 ‘유럽의 꿈’이며, 인류사 차원에서도 폐기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따라 배워야 할 모델이다.

이 대목에서 눈을 돌려 우리 상황을 보자. 대내적으로 양극화는 극심해지는 데 영국보다 사회안전망은 더 열악하다. 대외적으로 8일 사드 한반도 배치 확정으로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12일 남중국해 영유권분쟁에 대한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앞두고 미ㆍ중ㆍ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과 유럽의 혼란은 동아시아의 위태로움에 비하면 작은 소동일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영국처럼 극단주의 정치인과 언론이 득세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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