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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대체 누구의 피로감인가

입력
2017.12.11 16: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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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어 적폐수사에도 ‘피로감 프레임’

70%가 지지하는데 어느 국민이 피곤한가

국정원, 다스, 우병우 이번엔 제대로 하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적폐청산 연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적폐청산 연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피로감’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새 정부 개혁작업에 앞장서야 할 검찰총장의 입에서 말이다. 검찰 수뇌부의 인식은 여전히 국민 전반의 기대 수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피로감은 주요 고비마다 프레임의 소재가 돼 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효율적 도구로 이용됐다. 피로감 프레임은 조직을 이완시키고 일의 추진력을 떨어뜨린다. 대다수 구성원이 지치고 힘들다는데 동력이 유지될 리가 없다. 주변으로의 전염과 확산 속도도 빠르다. 남이 피로감을 말하면 자신의 생각도 쉽게 부정적으로 바뀐다.

세월호 때가 그랬다. “언제까지 세월호 수렁 속에 있어야 하느냐. 이젠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강력한 주문이 됐다. 진상규명 반대 세력이 만든 피로감 프레임은 넓게 퍼져나갔다. 서로가 부담스러워하며 세월호를 대화의 화제로 삼기 꺼려했다. 세월호 이슈는 민생을 불편하게 하는 걸림돌이 됐고, 유족들은 졸지에 ‘피로 유발자’ 취급을 받았다. 강고한 프레임이 깨지는 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적폐청산 수사도 유사한 궤적을 밟는 듯하다. 진실이 드러나고 단죄를 두려워하는 세력이 피로감 프레임을 유포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하명수사’ ‘정치보복’ 프레임이 통하지 않으니 늘 써 오던 프레임을 다시 꺼내 들었다. “과거에만 발목 잡혀 미래지향적인 국가 운영에 방해가 된다”는 구태의연한 논리에 “적폐수사에 사회가 지쳐가고 있다”는 왜곡된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잘못된 과거와의 결별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고, 70% 가까운 국민의 찬성에 피로감 운운은 생뚱맞다.

보수 일각의 피로감 프레임을 수사 책임자인 문무일 검찰총장이 언급한 것은 실망스럽다. 일부 야당의 정치공세에 대한 검찰총장으로서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프레임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칫 검찰 스스로 정권의 무리한 수사를 자인하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있다. 수사팀과 충분한 소통이나 조율을 거쳐 나온 것도 아니어서 사기 저하마저 우려된다.

오죽하면 수사팀에서 “실제 수사기간은 3개월 남짓으로 검사와 수사관들은 활력이 넘치고 있다”고 자진해서 해명문을 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임기 초반의 대선자금 수사는 10개월 이상 소요됐고, 다른 대형사건 수사도 반년 넘는 경우가 많았던 사실만으로도 피로감 프레임의 허구성이 입증된다. 실제 남은 수사 과제만 보더라도 연내 마무리는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댓글공작 지시나 박 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국고 손실 혐의 등의 수사는 한창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지금의 적폐청산 수사는 그동안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진실을 왜곡했던 사안이 상당수다. 국정원이든, 다스든, 우병우든 검찰이 그때 올바로 수사했다면 다시 들출 일은 없었다. 검찰은 그만큼 원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여론이 “그만하자”고 해도 “적폐를 근절하겠다”고 해야 하는 게 검찰 아닌가.

지난달 세월호 등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적 참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일부 야당은 “5번째 수사까지 해야 하느냐”며 피로감을 다시 입에 올렸다. 거꾸로 말하면 경찰과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 특별조사위 등 네 차례의 조사가 얼마나 무기력했는가를 반증하는 셈이다.

피로감 프레임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 피로감은 속 시원히 밝힐 것을 밝혀내지 않고 감추려고 들 때 생기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 검찰이 부정의하고 무능했기 때문에 속이 터지고 피로가 쌓이는 것이다. 적폐수사에 피로감이 생긴다면 그건 검찰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피로감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국가다.

이번에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또다시 하자는 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무슨 시한을 두고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국민은 언제든지 기다릴 각오가 돼 있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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