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경영자다. 41조원의 분식회계 총책임자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다. 부실경영으로 30조원의 공적자금이 그룹 계열사에 투입됐다.
세계경영을 내걸고 해외를 정복하다가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해외를 누비던 그는 사법처리의 단죄를 받은 데다, 무거운 족쇄로 인해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됐다. 1999년 그룹 해체로 해외 도피했다가 2005년 귀국해 구속된 지 2년 후 사면 복권됐지만, 18조원의 추징금에 묶여 재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 전 회장만큼 영욕을 겪은 기업인은 많지 않다. 후세를 위한 밀알론을 강조하고, 하루가 30~40시간이면 좋겠다며 일만 했던 그는 젊은이들의 우상이었고, 샐러리맨들에겐 영웅이었다. 남들보다 10년이나 앞선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경영의 진군나팔을 불어 신라시대 장보고 이래 최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선진국은 물론 미개척지였던 중앙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에 세계경영의 말뚝을 박았다. 공교롭게 12세기 칭기즈칸의 정복로를 따라 유라시아에서 동유럽으로 사업장을 넓혀 '20세기 칭기즈칸'으로도 불렸다.
▦그는 결혼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에 출근해서 자정을 넘겨 퇴근하기 일쑤였다. 해외 체류기간이 한 해 절반이 넘고, 차내에서 면도하고, 햄버거로 식사를 때웠다.
시간을 아낀다며 야간 비행기를 타고 이른 새벽 현지에 도착하곤 했다. 공항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드레스 셔츠를 갈아 입은 후 파트너와 상담을 하는 일도 많았다. 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세운 후 고속 성장을 거듭해 그룹이 해체될 때인 99년엔 계열사 41개, 국내외 고용인원 15만명, 해외법인 396개를 거느린 재계2위 그룹 총수로 부상했다.
▦김 전회장이 최근 그룹 해체 10년 만에 전직 사장단과 회식을 해 주목 받고 있다. 내달 말 대우 창립 42주년 행사에도 참석한다고 한다. 사업 재개설이 나돌지만 국내에 기반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다.
실패한 경영자로서 무대에서 퇴장한 기업인일 뿐이다. 다만 그가 20개국 이상의 정상들과 교분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소중한 자산이다. 운신의 폭을 넓혀줘 해외 유력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바탕 삼아 자원외교 등으로 여생을 국가에 봉사하게 하는 기회를 주면 어떨지 싶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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