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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구호품마저 차단… 전쟁만큼 고통스러운 ‘물품 부족’

입력
2017.12.22 18: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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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수입 물품 반입 전면 차단

식량ㆍ식수 생존물품 턱없이 부족

밀가루 가격 2배 등 물가도 폭등

수도 사나 지역 전투ㆍ공습 재개

병원 시설 파괴되고 환자 급증

의료진ㆍ의약품 모자라 발만 동동

예멘 남서부 타이즈 내 버려진 공사 현장에서 피난민 세함 알리(15)가 불을 지키고 앉아 있다. 세함의 가족은 예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 곳으로 도망쳐 살아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예멘 남서부 타이즈 내 버려진 공사 현장에서 피난민 세함 알리(15)가 불을 지키고 앉아 있다. 세함의 가족은 예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 곳으로 도망쳐 살아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올 한 해는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인도주의 단체들에 유독 힘든 해였다. 전 세계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운데 이에 희생당하는 민간인에게 의료지원 등 구호의 손길을 투입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막혔다. 특히 지난 약 2년 6개월간 사우디아라비아 동맹군과 후티 반군 간 충돌이 이어진 예멘의 경우 어려움이 극심했다. 우리는 여전히 전문 인력부터 충분한 구호물자까지 예멘에 들여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우디 동맹군은 지난달 6일부터 3주간 예멘의 모든 공항과 항구를 봉쇄했다. 일반 수입은 물론 인도주의 구호물품마저 차단한 이 봉쇄는 현재 일부 해제됐으나 그 여파가 예멘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예멘 내 수백 개의 의료 시설이 봉쇄와 전투로 인해 훼손, 폐쇄됐다. 예멘 국민 수백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으나 식량, 식수 등 기초 물품과 약품ㆍ의료 물품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일부 인도주의 단체의 항공 및 선박 운항이 허가됐을 뿐 음식과 연료를 포함한 일반 상업용 수입 물품은 여전히 반입이 불가능하다.

생존에 필요한 식수와 식자재 가격은 끝을 모르고 급등하고 있다. 지난 10월과 11월 사이 북서부 사다의 식자재 가격은 한 달 만에 6% 이상 올랐다.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환자인 파티마는 “전쟁 때문에 더 이상 음식을 살 돈이 없다”며 “가게 안에 음식이 있고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가격이 폭등해) 살 수 없다”고 했다. 파티마에 따르면 그가 사는 마을의 밀가루 10㎏이 예전에는 4,000리얄(약 1만7,000원) 가량이었는데 최근엔 9,000리얄(약 4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

봉쇄와 함께 전투 빈도가 늘어나면서 200% 이상 인상된 연료 가격 또한 예멘인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연료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누군가는 병원에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또 누군가는 ‘병원에 가는 것’과 ‘가족을 위해 식량을 구입하는 것’ 중 단 하나만을 고르기 위해 갈등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별 병원 또한 연료 가격을 부담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간신히 운영되던 몇몇 병원조차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멘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서부 하자의 알 가무리 병원 일부가 지난 4일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 이 공습으로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등이 파괴됐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예멘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서부 하자의 알 가무리 병원 일부가 지난 4일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 이 공습으로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등이 파괴됐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29일부터 거리 전투와 함께 공습이 재개돼 수도 사나 전역이 마비됐다. 민간인들은 수일간 집에 갇혀 지냈고 의료 지원을 요청하기에도 안전하지 않아서 부상 당한 채로 방치됐다. 구급차로 이들을 후송해 오려 했던 의료팀들은 공습에 노출돼 폭격을 맞았다.

무력 충돌은 사나 서쪽의 하자, 암란, 이브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달 2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예멘 북서부 지역 카메르와 후트의 병원 두 곳에서 환자 28명을 받았는데, 모두 무력 충돌로 부상당한 환자였다. 이틀 후인 4일에는 하자 내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알 가무리 병원이 공습을 받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이 파괴됐고 응급실에 있던 12명의 환자를 대피시켰다. 시설 일부가 무너졌음에도 알 가무리 병원에는 공습 직후 인근에서 발생한 또 다른 폭격의 피해자 22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예멘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식수 및 위생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모니아 칼레드는 “2011년 이후 보지 못했던 거리 전투도 최근 다시 목격하고 있다”며 “거리 전투는 주로 특정 타깃을 공격하는 공습보다 더욱 예측이 불가능해 안전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격화하는 무력 충돌로 인해 오랫동안 사라진 감염병도 다시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달 초 예멘에서는 디프테리아(Diphtheria) 감염 의심 환자 318명이 발견됐으며 이중 28명은 사망했다. 디프테리아는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진 감염병이다. 한때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은 질병으로 악명 높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아동 예방접종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관리 가능한 질병으로 여겨졌고, 예멘에서도 1982년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췄다. 이러한 디프테리아가 35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예멘의 보건 시스템이 무너진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멘은 이미 올해 35만명의 환자가 발생한 대규모 콜레라 사태에서 간신히 회복 중이다. 콜레라로 1,800여명이 사망한 현재 또 하나의 치명적인 전염병을 감당할 능력이 이곳엔 없다.

티에리 코펜스 한국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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