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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청와대가 환구시보와 다퉈서야

입력
2016.08.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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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주요 의사결정 시스템 엉성

사드 결정 땐 경제 영향분석도 빠져

전면 수술 없인 정부 위험 가중될 것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7일 오후 춘추관에서 사드 관련 중국 관영매체 보도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방중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밝히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7일 오후 춘추관에서 사드 관련 중국 관영매체 보도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방중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밝히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말단 행정기관의 서비스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수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업무 처리에 있어서 창구 공무원 개개인의 민첩성이나 유연성, 적극성은 우리나라와 비견될 만한 나라가 별로 없을 것이다. 과거 미국에 몇 년간 거주할 때 현지 교통국(DMV)에 가서 일을 보면서 새삼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던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나무늘보들의 일하는 장면은 수많은 관객에게 ‘빵 터지는’ 폭소를 선사했다. 범죄자 추적을 위해 차량번호를 조회하러 교통국에 들어선 주인공 경찰 토끼 ‘주디’의 마음은 절박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게 왠걸, 교통국 직원은 모두 나무늘보들이다. 서류에 도장을 찍는 동작도, 농담에 반응해 웃는 속도까지 모두 초저속 슬로우비디오다.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금방 연상될 정도로 실제 미국 교통국 직원들의 일하는 분위기가 그랬다.

우리나라는 운전면허시험장만 봐도 다르다. 미국보다 더 북적일지는 몰라도 창구 직원들은 민첩하며, 일 처리의 흐름은 물 흐르듯 원활하다. 우리나라 행정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자부심이 터무니 없는 착각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자주 느끼게 된다. 말단 행정서비스의 질이 사실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매뉴얼대로 하면 되는 민원 창구 서비스보다 정작 훨씬 더 중요한, 국가 대사를 다루는 최고위급의 정무적 행정이 위태로울 정도로 엉성하게 진행된 것 같은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을 둘러싼 일련의 파문들은 최근 최고위 행정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결정 자체의 옳고 그름을 새삼 따지자는 건 아니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오히려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편에 속한다. 문제는 사드 배치 결정과정이다. 얼마 전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기자들의 간담회가 있었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조치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과정에서 중국 반발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분석되고, 회의 같은 걸 통해 대통령께도 보고됐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하지만 유 부총리는 그저 “주의해서 보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을 뿐이다.

1997년 12월. 미국 백악관 상황실에선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장관 회의가 열렸다. 재무부는 지원에 반대했다. 하지만 미군의 한반도 주둔 현실과 위기를 틈탄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국방부와 국무부가 적극 주장해 결국 지원 결정을 이끌어 냈다. 한국 금융지원 여부를 따지는 회의에 국방부와 국무부까지 참여해 주장을 펴는 게 백악관 행정의 수준이다. 반면 우리 청와대에서는 사드 배치 결정에 앞서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책임 있는 분석조차 아예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지난 7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직접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를 비판하고 나선 것도 청와대의 정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악수(惡手)였다. 중국 매체들의 보도가 묵과하지 못할 정도로 부당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응이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은 보다 신중히 모색됐어야 한다. 외교부든 외교안보수석이든, 명목상 정부 대변인을 맡은 문체부든 회의를 갖고 적절한 방식과 수위를 논의했어야 옳다. 어떤 주요 국가도 외교문제화 할 수 있는 사안을 국가원수의 공식창구를 통해 그렇게 직설적으로 논평하지는 않는다.

청와대는 단순히 정의나 의리, 국민에 대한 충정만으로 움직여서는 곤란하다. 그건 말단 행정서비스의 가치일지언정, 국가대사의 원칙과 전략을 올바로 세우고 굳건히 시행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의사결정시스템이 정상 가동돼야 한다. 일반적 추정대로 사드 배치 결정과정에서 경제적 여파에 대한 책임 있는 분석도, 청와대 홍보수석의 논평에 앞서 그 적절성에 대한 깊이 있는 정무적 논의도 없었다면, 현 정부는 매우 위태롭고 위험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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