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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캐럴이 들리지 않는다

입력
2016.12.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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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에 발목 잡힌 전형적 내우외환

경제 수출ㆍ소비ㆍ투자 ‘트리플 추락’

쓰레기통서 장미 피운 저력 보여 줄 때

13일 오전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앞 광장에서 열린 ' 복면산타가 간다! 소외된 아이들의 소원을 담아'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캐럴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앞 광장에서 열린 ' 복면산타가 간다! 소외된 아이들의 소원을 담아'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캐럴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여객기를 타고 홍콩의 첵랍콕 공항으로 접근하다가 내려다보면 숟가락 머리 모양의 대형 인공섬과 이곳으로 연결된 해상 다리가 눈에 띈다. 홍콩과 주하이, 마카오를 연결하는 강주아오 대교다. 세계 최장 해상대교로 총연장 55㎞에 이른다. 이미 교량 구조물 공사가 끝났고 내년 말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 중이다. 다리 상판 포장면적은 축구장 100개에 육박하고 수면 40m 아래 터널은 33개의 튜브를 연결했다. 해상의 만리장성처럼 보였고, 중국의 굴기가 느껴지는 섬뜩한 규모다.

첵랍콕 공항에서 홍콩으로 들어가는 높은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항만에는 화물컨테이너가 가득했다. 듬성듬성한 우리 항만과는 대조적이다. 이미 청산의 길로 접어든 한진해운 컨테이너도 띄엄띄엄 보였다. 홍콩역사 위로 우뚝 솟아 있는 국제금융센터(IFC) 건물은 백화점과 어우러진 곳으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대형 눈사람이 등장했고 캐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페리로 한 시간여 거리의 마카오 대형 호텔의 카지노에는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홍콩은 한때 우리와 아시아의 ‘4마리용’이라며 경쟁하던 곳이다.

우리는 어떤가. 전형적인 내우외환이다. 내부적으로는 최순실게이트에 이은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얼어붙었다. 항룡유회(亢龍有悔)라고 했던가. 하늘로 올라간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식물인간이 됐고 집권여당은 둘로 쪼개질 지경이다. 그나마 중심을 잡아야 할 야당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매몰되어 국민과 경제는 안중에도 없다.

경제를 살려야 할 재계 역시 최순실 게이트에 발목이 잡혀 특검에 불려 다녀야 할 처지가 됐다. 신규투자는 언감생심, 내년도 사업계획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대표선수인 삼성은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에 발목이 잡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발버둥치고 있기는 하지만, 해외 판매실적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길거리에서는 캐럴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지적재산권 문제 때문이라지만, 심리적 위축으로 소비가 원활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수출ㆍ소비ㆍ투자의 ‘트리플 추락’에, 각종 구조조정ㆍ개혁은 멈췄다.

외부환경은 더욱 어렵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 신호탄이다. 예고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물론, 각국의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더욱이 내년에도 미국은 3차례에 걸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만 더 인상하면 우리와 금리 차이가 없어진다. 미국의 금리인상 여파는 후폭풍이 심각하다. 금융위기 10년 주기설’도 겁이 덜컥 난다. 4,000억달러에 못 미치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우리가 금리를 따라 올릴 경우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1,500조원에 달하는 기업부채 상환도 쉽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 성향도 큰 부담이다. 그는 우리나라 무역흑자를 공공연하게 비판하면서 각종 관세장벽을 강화할 태세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정권에서 경제는 파티 한 번 못 해 보고 악몽부터 시작됐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욱 위험할 것이라는 진단이 많다. 게다가 정치는 박정희 시해 사건 때 만큼이나 위험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정치와 경제가 모두 미궁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굴곡이 있듯, 국가도 늘 부침이 있다. 극즉반(極則反)이라고 했다. 극한 상황에 도달하면 다시 돌아온다는 희망이다. 1966년 미국의 이브닝 스타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피길 기다리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운 저력이 있다. 박 대통령 덕분에 국민 대통합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스개도 있다. 단지 지금처럼 바닥을 쳤을 때 다시 치고 올라가는 동력이 없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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