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단기간에 급증한 탓
공존하는 문화 성숙 못해
표준 펫티켓, 교육시스템 필요
美선 ‘좋은 반려견 시민권’ 부여
임대차 계약 등에 참고자료 활용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2년 전 반려견 여섯 마리를 데리고 윗집으로 이사 온 B씨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한두 마리가 짖는 게 아니라 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짖어대니 집안에서도 마음 편히 지내기 어려웠다. A씨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환경부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 등을 통해 B씨에게 반려견들이 성대수술을 받거나 짖음방지목걸이를 달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B씨도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 많고 몸이 약한 유기견들을 입양한 터라 마취가 필요한 성대수술을 하기 어려운 데다, 짖음방지목걸이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B씨 입장이었다. A씨와 B씨는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중재로 유독 많이 짖는 두 마리만 성대수술을 받는데 합의했다.
1인 가구 증가,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으로 반려동물 보유 가구가 증가하면서 층간소음, 개물림 사고 등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갈등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펨팻족’(Family와 Pet의 합성어)과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전무한 비반려인들 사이의 인식 격차가 커 사회적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잖다. 전문가들은 향후 반려동물 보유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을 대비해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펫티켓 교육을 활성화하고 갈등조정 창구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려인ㆍ비반려인 갈등에 반려동물 규제ㆍ보호자 처벌 강화
최근 반려인ㆍ비반려인 갈등에 ‘기폭제’가 된 건 지난해 9월 가수 겸 배우 최시원씨가 기르는 프렌치 불도그가 유명 한식집 주인인 50대 여성을 물어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사고 당시 목줄을 하지 않은 반려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여성에게 달려들어 정강이를 문 영상이 공개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반려견 보호자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대형 반려견이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은 경우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내용의 ‘최시원 특별법’ 제정 청원이 올라와 3,000명이 넘게 참여하기도 했다. 반려견 훈련 전문가인 이웅종 연암대 교수는 “개물림 사고는 안전에 관련된 이슈라 다른 반려동물 관련 갈등보다 여론의 파장이 더 크다”며 “게다가 최시원씨 사건은 사고 당사자들이 모두 유명인들이라 매스컴을 통해 사건에 대한 관심이 확대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사건 발생 직후 즉각 반려동물 보호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부터 맹견으로 분류되는 개 5종은 목줄과 입마개, 일반 반려견은 목줄을 반드시 착용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때 부과하는 과태료를 최대 10만원에서 50만원로 올렸다. 법안 개정 과정에서도 반려인들과 비반려인들의 갈등이 두드러졌다. 목줄, 입마개를 하지 않았거나 배변을 치우지 않은 반려인들을 신고하고 포상금을 받는 이른바 ‘개파라치 제도’도 시행 여부를 두고도 양측의 찬반 논란이 가열돼 결국 철회됐다. 체고 40㎝ 이상 반려견에게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 학대”라며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반려인ㆍ비반려인ㆍ반려동물 공존하려면 상호이해 돕는 교육이 필수
실제 우리나라는 반려동물 수가 빠르게 팽창하면서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가 안착하지 못한 상황이다. 황원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 7월 내놓은 ‘2017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다’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은 반려동물 보유 가구에선 86.8%에 이르는 반면 비보유 가구는 46.8%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에서 펫티켓을 잘 지키고 있다’고 여긴다는 응답률도 반려동물 보유 가구는 52.1%였지만 비보유 가구는 16.6%에 불과했다.
양측의 인식 격차를 좁히기 위해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표준화된 펫티켓과 교육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은 1884년 설립된 애견단체 ‘미국컨넨클럽’이 1989년부터 책임감을 갖춘 견주와 모범적인 성품을 가진 반려견에게 ‘좋은 반려견 시민권(Canine Good Citizen)’ 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시민권을 받기 위해선 보호자와 반려견이 ▦낯선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기 ▦예절 바르게 앉기 ▦관중 속 걷기 등 10가지 테스트를 함께 통과해야 한다. 이 시민권은 미국 전역에서 통용될 뿐만 아니라 주택임대계약을 맺을 때도 임대인이나 보험회사가 해당 반려견이 공동주택에서 문제를 일으킬 염려가 없다고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이웅종 교수는 “미국, 일본, 영국 등 반려동물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은 공동생활을 하기 적합한 ‘모범견’으로 기르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주거문화나 공동규범에 적합한 한국형 모범견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려동물을 사회구성원의 일부로 여기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인의 반려동물을 함부로 대하거나 허락 없이 만지는 행동을 삼가는 등의 펫티켓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서 펫티켓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순영 활동가는 “반려동물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반려동물 보유 유무와 상관 없이 동물들도 마땅히 주기적으로 산책을 하고, 놀이를 즐길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며 “비반려인들도 사람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반려동물과 같은 환경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조정창구도 확대돼야
공동체 내에서 반려동물을 둘러싼 갈등을 중재할 창구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 동물보호법에는 지자체가 동물학대 등 위법 행위를 단속ㆍ수사할 수 있는 동물보호감시원(공무원)과 반려동물 관련 교육ㆍ홍보 활동을 지원하는 동물보호명예감시원(민간인)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물보호감시원은 전국적으로 328명(2016년 기준), 동물보호명예감시원은 253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보호감시원이 동물 관련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고, 명예감시원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지자체도 많다.
자치구마다 많게는 연간 300건이 넘는 반려동물 관련 민원이 접수되는 서울시는 지난해 연말부터 공동주택관리자를 대상으로 동물갈등 해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길고양이나 반려견 전문가를 섭외해 관리자들이 반려동물 관련 주민 갈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목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리자들이나 입주자 대표들은 공무원에 비해 주민 실생활에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어 반려동물 갈등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동작구, 송파구, 마포구에서 실시한 교육이 입소문을 타면서 다른 자치구에서도 교육 신청이 접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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