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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리품 공직

입력
2017.11.05 18: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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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토교통부 산하 협회의 한 임원은 면식이 조금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지인이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라 단순한 안부 전화는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그는 그 협회 고위직 자리에 가려는데 분위기가 어떤지, 연봉이나 활동비, 근무여건 등을 물어봤다. 협회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지만 내정을 받은 듯이 얘기를 했다. 이 협회 고위직 자리는 부이사관급 공무원 등 업무 관련성이 있어야 올 수 있다. 협회 임원은 이번에는 생짜배기 정치권 인사가 올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챙기는 관행이 엽관제(獵官制ㆍ spoil system)다. 선거라는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spoils)을 챙긴다는 의미다. 미국은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 자리가 5,000개쯤 된다. 인구비례로 단순하게 따진다면 우리나라도 족히 1,000개쯤 될 것이다. 이 자리에 선거캠프에서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게 논공행상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이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무수히 많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탄생했지만, 과실은 정치인에게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 현직에 있는 기관장이나 임원 등이 쉽게 자리를 비켜줄 리 없다. 그러다 보니 비리를 캐내 죄를 묻거나, 불륜 등의 도덕적 망신을 줘서 쫓아낸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을 때 경찰청 특수수사과 사람에게 들었던 한 고위 금융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가 물러나지 않고 버티자 불륜 첩보를 캐낸 것이다. 그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경찰이 군밤 장수로 변장한 채 지켰다. 이후 그가 여직원과 함께 모텔에 들어가는 현장 사진을 촬영한 뒤 조용히 들이댔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그는 두말없이 사표를 던졌다.

▦ 이념투쟁은 권력투쟁의 투영이며, 권력투쟁은 결국 양질의 공직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세력간 다툼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대통령만 바뀌면 코드가 맞는 측근 인물들이 핵심보직으로 가고, 예외 없이 부패 수사가 동반된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사표를 던진 것이 신호탄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는 ‘공직자 사퇴를 종용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채용비리 근절의 일환이라고 범위를 한정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믿음이 안 간다. 공공기관 상부가 전문성 없는 정치세력의 거점으로 전락하면서 채용비리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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