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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천황과 일왕

입력
2017.12.11 15: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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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징적 국왕 아키히토(明仁)가 2019년 4월 30일 물러난다고 한다.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다음 날 즉위하면 일본은 30년 만에 헤이세이(平成) 연호에 종지부를 찍는다. 일본 천황제는 국왕의 현실 정치 간여를 허용하지 않는다. 전후 제정된 현 일본 헌법에서 국왕은 헌법이 정한 국사 행위만을 할 뿐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고, 그 국사마저 내각의 승인을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직전 국왕인 히로히토(裕仁)의 최종 결정으로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일어난 데 대한 반성이다.

▦ 제국주의 시기 대일본제국헌법에서 ‘천황’은 통치권을 갖는 국가의 원수였으며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하지만 7세기 후반 덴무(天武)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천황제의 역사 속에서 ‘천황’이 정치적 실권을 휘둘렀던 것은 500년 남짓이다. 14세기 이후 무인의 득세가 이어졌던 바쿠후(幕府) 시기 국왕 역할은 쇼군(將軍)이 대신했다. ‘천황’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입헌군주제를 뼈대로 한 제국헌법이 제정돼 전쟁이 끝나기까지 약 60년간 정치 실권을 가졌지만, 전후 다시 상징적인 존재로 돌아가 이미 70년이 지났다.

▦ 실권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일본 국민이 부르는 대로 그들을 고유명사로 “천황”이라 부르기를 주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제 2차대전에서 일본 최대의 적국이었던 미국 등 영어권의 공식 표기는 ‘Emperor’다. 일본과 싸워 병사만 500만명 가까이 죽거나 다친 중국도 ‘천황’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조금 모호하다. 공개적으로 ‘천황’ 사용을 밝힌 김대중 정부 이후 정부의 공식 호칭은 ‘천황’이지만, 언론을 비롯한 일반은 어느새 ‘일왕‘으로 바꿔 부른다.

▦ 지난해 작고한 뒤 한일 협력에 애쓴 공로로 대한민국 수교훈장을 받은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이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일왕(日王)’이라는 한자를 볼 때마다 일본 닛신(日淸)식품이 만든 닛신라오(ラ王)라는 라면이 떠오른다는 그는 일왕이라는 표현에 “거의 모든 일본인이 모욕당한 느낌을 갖는 것은 틀림없다”고 했다. 얼마 전 트럼프 방한 때 독도 새우가 메뉴에 오른 것을 두고 일본이 항의할 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속 좁다”는 느낌과 비슷할까, 아니 그 이상일까.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거듭 생각해 볼 문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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