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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세계' 헤아리려 12년 준비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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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세계' 헤아리려 12년 준비해 그렸다”

입력
2017.05.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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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심하게 덴 빼떼기를 겨우 살려서 어미에게 보냈더니 어미마저 제 새끼를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내고 있다. 창비 제공
불에 심하게 덴 빼떼기를 겨우 살려서 어미에게 보냈더니 어미마저 제 새끼를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내고 있다. 창비 제공

“생전에 보여드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네요. 저야 12년을 앓은 끝에 쓰신 문장의 행간까지 다 읽어내며 그린 그림이라고 나름대로는 자부해요. 그렇지만 권정생 선생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은 아니거든요. 직접 보셨다면 뭐라 하셨을까, 궁금하네요.”

17일로 다가온 고 권정생(1937~2007) 선생 10주기를 맞아 그의 단편 ‘빼떼기’를 그림책으로 재탄생시켜 내놓은 김환영(58) 작가는 14일 이렇게 말했다. ‘빼떼기’는 불에 크게 데는 바람에 부리가 문드러지고 발가락도 떨어져나가 삐딱하니 걷는다고 해서 빼떼기라 이름 붙은 병아리에 대한 이야기다. 어미 닭도 알아보지 못하고 쪼아대는 빼떼기를 소중하게 돌보는 아이들 이야기가 담겼다. 그러고 보니 병아리나 닭을 그린 붓 터치가 제법 강렬한 게 이러저러하게 나와있는 기존 권 선생 작품의 그림책과는 다소 결이 다른 부분이 있다.

김 작가는 권 선생의 단편을 그림책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어했다. 평소 권 선생의 삶과 작품을 흠모해오기도 했거니와, 그림책 작가라 해서 ‘삽화’를 그리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좀 더 큰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망도 있어서였다. 이를 위해 권 선생의 여러 작품들을 쭉 탐독하다 1988년작 ‘빼떼기’를 고른 뒤 허락을 얻기 위해 2004년 경북 안동으로 내려갔다.

허락은 쉽게 얻었다. 흔쾌히 그리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막상 그리려니 시골 출신이 아니어서 닭이나 병아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권 선생을 찾아가기 전에 ‘마당을 나온 암탉’을 그렸지만 그 작품에서의 닭과, 권 선생의 작품에 등장하는 닭은 또 다른 닭이었고, 그래서 이건 또 다른 작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 선생님이 그림도 잘 그리세요. 제가 이런 느낌인가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했더니, 잘 이해를 못한다 싶으셨던지 부엌에 아궁이가 어떻게 자리잡고 앉는지, 모이집은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어야 하는지 직접 그려 보여주시더라고요.” 그 때 결심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시골에서 직접 병아리를 키워보리라.

고 권정생 선생의 삶을 따라 시골생활을 택한 김환영 작가가 작품 속 빼떼기에게처럼 하얀 무명옷을 만들어 입히고 있다. 창비 제공
고 권정생 선생의 삶을 따라 시골생활을 택한 김환영 작가가 작품 속 빼떼기에게처럼 하얀 무명옷을 만들어 입히고 있다. 창비 제공

그 길로 경기 가평에 빈집 하나를 차지했다. 닭장도 지었다. 바로 가평 장터에 나가 닭 1마리에 병아리 8마리를 샀다. 빼떼기를 위해 검은 병아리도 따로 구했다. 모이 주고 열심히 키웠다. 무럭무럭 자라고 새끼를 쳤다. 한 달을 넉넉히 먹이던 15㎏들이 사료포대가 3~4일이면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세어보니 닭 숫자가 200마리를 넘어섰다. 닭 키워 그림 그리려다, 닭 키우느라 그림을 못 그리는 상태가 됐다. “그림책 작가가 아니라 양계장 사장님이 되어버렸다”며 웃었다.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1년쯤 그렇게 산 뒤 다시 권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니 문자 사이 행간이 읽히기 시작했다”고 했다. 시골의 계절변화, 병아리의 성장속도, 처음 낳은 알의 모양, 교미할 때 모습, 닭의 전체 숫자와 그 속에서 나오는 암컷과 수컷이 비율 같은, ‘닭쟁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 전까지 권 선생님의 세계관, 그리고 그것을 잘 풀어내는 동화적 상상력, 감동적인 서사 같은 것을 무척 부러워했었지요. 새삼 권 선생님의 작업은 오랜 관찰 끝에 얻어진 굉장히 정교한 글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이후부터는 스케치 작업, 밑그림 작업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곧바로 책을 낼 수도 있었다. 출판사에서 내자고도 했다. 그런데 손이 멈췄다. “한중일 그림책 작가들이 하는 공동작업이 있었는데 그 작업에서 다시 권 선생님의 ‘강냉이’를 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빼떼기’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 작가 스스로가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왠지 못마땅스러워 몇 년을 이래저래 미루다가 2015년부터 다시 손을 대 마무리했다. “뭐랄까요, 나자빠졌다고나 할까요. 저로서는 할 만큼 다 했으니까 더 잘 해보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는 이제 이 정도에서 일단 내려놓자고 생각한 겁니다.” 권 선생의 10주기를, 그렇게 맞이하고도 싶었다.

김 작가에겐 사실 꼭 도전해보고 싶은 권 선생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빼떼기’와 함께 들고 간 작품이 있어요. ‘무명저고리와 엄마’입니다.” 1972년작으로 권 선생의 초기작 가운데 하나다. 일제 이후 베트남파병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현대사를 따라 발생한 뼈아픈 일들을 다뤘다.

“저도 자랄 때 일제시대 징병이나 공출, 독재정권 시절의 고문과 실종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거든요. ‘무명저고리와 엄마’를 읽으면서 그런 그림들이 떠올랐어요. 선생님께서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면 좀 내버려둬도 좋을 것 같다’고 하시는 바람에 가만 있었습니다. 아마 너무 힘든 작업이 될까봐 그러신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이후 계속해서 제 머릿속으로 구상 중이니까 언젠가는 도전해야죠.” 권 선생의 삶과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생명과 평화, 그 자체를 그림으로 표현해내고자 시골생활을 택한 그는 지금도 충남 보령에서 병아리들을 키우며 산다.

이번에 서울 나들이도 한다.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월드컵로 창비서교빌딩 지하 1층 까페창비 스튜디오 B1홀에서는 33점의 작품을 들고 원화전시회를 연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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