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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무색옷

입력
2017.11.09 11:3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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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평생 백의만 입고 사셨어요. 내가 색옷을 권해드려서 환갑 지내신 이후 처음 무색옷을 입으셨어요.” 여기에서 ‘무색옷’은 ‘물감을 들인 천으로 만든 옷’이다. ‘색옷’과 ‘무색옷’이 같은 뜻의 말인 것이다. 그런데 ‘무색옷’란 낱말을 다음과 같이 쓰기도 한다.

“이 제품은 검정옷을 포함, 다양한 색상의 패션 의류를 위한 컬러 의류 전용 중성세제로 유색옷과 무색옷을 구분해서 빨래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위해 개발됐다.”

이 글을 쓴 기자는 ‘무색’을 ‘무색(無色)’으로 생각하고 이를 ‘흰색’의 뜻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무색(無色)’은 ‘흰색’이 아니다. ‘무색의 액체’나 ‘무색의 기체’에서처럼 ‘무색(無色)’은 ‘색깔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애초에 ‘옷’과는 어울릴 수 없는 말인 것이다. ‘흰 옷’을 ‘무색옷’으로 쓴 건 ‘무채색(無彩色)’에 이끌린 오류일 뿐이다.

‘옷’과 어울려 쓰이는 ‘무색’은 ‘물감을 들인 빛깔’을 뜻하는데, 이 뜻과 관련 지으면 ‘무색’의 원래 형태를 ‘물색’으로 볼 수 있다. ‘물색’의 ‘물’은 ‘옷감에 물을 들이다’에서의 ‘물’이다. 그렇다면 ‘물색’은 색을 뜻하는 ‘물’에 다시 ‘색’을 붙여 만든 말이다. ‘가마’에 같은 뜻의 말 ‘솥’을 붙여 ‘가마솥’을 만들고, ‘담’에 같은 뜻의 말 ‘장(牆)을 붙여 ‘담장’을 만드는 것처럼. 그런데 ‘물색’은 어떻게 ‘무색’이 되었을까? ‘물색’에서 ‘ㄹ’이 탈락하여 ‘무색’이 되었다. 복합어에서 ‘ㄹ’이 소리 나지 않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딸님’이 ‘따님’, ‘활살’이 ‘화살’, ‘바늘질’이 ‘바느질’이 되는 것처럼. 평범한 말이 흔한 언어 현상을 겪으며 낯선 말 ‘무색옷’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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