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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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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입력
2010.04.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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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착한 사람들이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속 리앤(산드라 불록)의 가족들은 이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착하고 순하다. 티셔츠 하나 덜렁 입고 추운 밤 거리를 헤매는 흑인 소년 오어(퀸튼 아론)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한 사연엔 고개를 끄덕일 만 하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측은지심은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온정이 마르고 닳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그 진정성에 의구심까지 든다. 오어에게 방을 내주고 아예 양자로까지 받아들이는 리앤의 헌신에 가족 누구 하나 작은 불평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들은 오어를 가족의 일원으로 껴안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든든한 재력에서 나온 삶의 여유 때문일까. 아니면 독실한 기독교도 가족만의 진실된 인간애 때문일까.

더군다나 영화의 배경은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인종차별에 따른 흑백 갈등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진 곳. 그러나 스크린은 흑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데 대한 백인들의 위협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리앤 친구들의 은근한 비아냥만 있을 뿐이다. '블라인드 사이드'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영화임에도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 이유들이다. 갈등을 최대한 배제한, 현실감 없이 착하기만 한 이야기에 눈물 흘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작 영화는 감동보다 잔잔한 웃음에 방점을 찍는다. 오어를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로 만들기 위한 리앤의 치마바람이 종종 입가를 자극한다. 흑인 불량배의 협박에 "난 검사 친구들이 많다"며 한치도 물러나지 않는 리앤의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이 따스한 웃음을 선사한다. 한때 선머슴 이미지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불록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웃음은 배가된다.

불록은 이 영화로 지난달 열린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보는 이의 가슴을 찢어놓는 강렬한 연기는 아니지만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런 연기로 눈길을 잡는다.

길거리를 전전해야 했던 오어는 리앤의 뒷바라지로 미식축구 명문대로 진학했고, 2009년 1,38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팀 볼티모어 레이븐스에 입단했다.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기록화면과 실제 리앤 가족의 사진은 이 동화 같은 무균질 이야기에 그나마 현실성을 부여한다. 제목 '블라인드 사이드'(Blind Side)는 쿼터백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가리키는 미식축구 용어. 삶의 사각지대를 서로 알아보고 지켜주는 오어와 리앤 가족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감독 존 리 행콕. 1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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