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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 북 장악음모 “결정적 자료”/쉬킨중장 비밀보고서 내용·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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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 북 장악음모 “결정적 자료”/쉬킨중장 비밀보고서 내용·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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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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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9월 스탈린지령 이행과정·후속조치 담아/동구처럼 신탁통치결정전 이미 단독정권 의도구소련은 북한진주 초기단계부터 38선 이북에 자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이익을 보장할 친소정권을 수립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음이 더욱 확연해졌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소련이 늦어도 45년 10월께는 북한에 친소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었으나 이를 입증할 1차 자료의 빈곤에 시달려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본보가 입수한 소련군 총정치사령관 쉬킨중장의 비밀보고서는 소련지도부의 북한내 단독정권 수립의도를 보다 확실히 뒷받침해주는 문서로 주목된다.

특히 이 보고서는 45년 9월 20일 스탈린이 연해주 군관구와 25군 군사위원회에 보낸 북한정권 수립에 관한 비밀전문의 후속문서라는 점에서 스탈린정권내부에서 진행된 북한장악 음모를 알려 주는 결정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스탈린의 비밀암호전문은 지난 81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가 간행한 「소련과 조선인민의 관계 (1945∼80) 」라는 자료집에 수록돼 처음 공개됐었다(이 자료집에는 당초 스탈린 암호전문중 제1·2항및 7항이 빠져 있었으나 지난 93년 2월 일본의 마이니치(매일)신문이 이를 입수, 보도했다).

그 제1·2항은 북조선지역에 소비예트정권및 체제를 구축하지 말고 광범위한 블록을 기초로 한 부르주아 민주정권을 수립하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놓고 학계에서는 두가지 해석이 나왔었다. 하나는 부르주아 민주정권이란 공산당을 블록의 중심으로 하는 친소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의미한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탈린은 점령당시 한반도 분단계획이 없었으나 이후 상황이 바뀌자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는 해석이었다.

따라서 이번 문서는 스탈린이 처음부터 부르주아 민주정권의 의미를 한반도에서 소련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담보할 토대로 규정, 북한에 동유럽에서와 같은 친소정권을 세워 소련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려 했음을 보다 명확하게 입증하는 자료인 셈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45년 12월 27일 한반도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삼상회의에 앞서 작성된 것이어서 소련이 남북한 단일정권 수립에 찬성한 것처럼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북한 단독정권 수립을 의도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소련이 친소정권수립의 발판으로 토지개혁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친소세력은 46년 3월 토지개혁법령을 발표, 토착지주세력의 제거에 들어갔다. 이 시도가 친소세력의 실권장악이라는 정략적 의도에 의한 것임을 알 수는 있었으나 이를 입증하는 문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따라서 토지개혁 3개월전인 45년 12월 쉬킨중장이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운동을 방해하는 지주세력을 제거하기위해 토지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대목은 소련이 단독정권수립 과정에서 토지개혁을 친소세력에 대한 지원책으로 구사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쉬킨이 『지난 45년 9월21일(스탈린비밀암호 전문을 수령한 날짜) 최고사령부의 지령서에 명령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데서도 이 보고서가 스탈린 지령에 대한 이행과정과 후속조치를 담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단국대 김학준 재단이사장은 『45년도 북한―소련관계에 대한 자료가 빈약한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북한점령 초기 소련의 속셈과 구상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서』라고 평가했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

◎쉬킨중장은 누구/북 정치 공작 총괄… 당시 3인자

요시프 바실리예비치 쉬킨중장은 당시 소련군 총정치사령관으로 점령지인 북한에 대한 정치공작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1945년부터 49년까지 총정치사령관이라는 중책을 맡을 만큼 최고지도자 스탈린의 총애를 받았으며 비밀경찰 체카(구소련 KGB의 전신)의 총수 베리아에 이어 제3인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1906년생인 쉬킨은 공산당 고급학교 「쿠룹스카야학교」를 졸업한 뒤 1939년 공산당 최고정치공작 코스를 수료하는등 철저하게 공산주의자의 길을 걸었으며 군내에서는 반스탈린 세력을 제거하는 정치군인으로서 입지를 넓혔다.

2차 세계대전중이던 42년 레닌그라드 군관구 정치사령관을 맡았던 그는 독일항복과 함께 총정치사령관으로 발탁돼 전후 동유럽등에 진주한 소련군의 정치조직을 이용, 점령지역에 소비예트 괴뢰정부를 세우는 작업에 깊숙히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흐루시초프가 집권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 이후 공산당 중앙위원, 최고회의 대의원에 머물다 73년 사망했다.

□쉬킨 보고서 요지

◇쉬킨중장 비밀 보고서 주요내용(1945년 12월25일)

1945년 9월 21일자(스탈린 암호전문 수령일자) 최고사령부지령서에 명령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수립은 아직 결정적으로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1)반일 민주주의 정당과 단체들을 기반으로 한 북한 부르주아 블록결성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2)우리는 앞으로 북한에서 철군할 경우 우리국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지위를 아직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족민주주의적 간부들도 아직 양성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민족 민주활동가중 인기가 높은 인물은 공산당 지도자들인 김일성과 박헌영,그리고 민주당 지도자인 조만식 등이다. 그런데 조만식의 소련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관구 군사위원회 의견에 의하면 우리 국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민족민죽간부들을 양성하는데는 4∼5개월의 기간이 더 필요하다.

3)북한지역의 경제복구와 민족 민주간부 양성같은 과업을 달성하려면 북한에서의 현 정치를 중앙화시키고 민족민주주의자들이 이를 잘 이용,정권을 획득해야 한다.

4)인민민주주의운동은 북한의 강력한 지주세력들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농업분야(토지)개혁을 잘 진행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5)제25군 직속의 이른바 민정조직을 잘 관리하고 북한의 정치 경제를 조정키 위해 우수한 소련간부들이 민정조직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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