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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안 돼" 시설서도 쫓겨나는 발달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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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안 돼" 시설서도 쫓겨나는 발달장애인

입력
2017.02.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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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7000명씩 증가하는데

관리 효율ㆍ편의성 이유로 외면

최중증일수록 시설 이용 못해

가족이 24시간 돌봄 부담

강원 횡성에 사는 1급 발달장애인 강진욱(27ㆍ가명)씨는 갈 곳이 없다. 가족들이 외출할 때는 문이 잠긴 집안에 혼자 있다. 2년 전까지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에 다녔지만 냉장고 음식을 몽땅 꺼내 먹거나 자신의 얼굴을 코피가 날 때까지 때리는 자해행동을 반복해 퇴소 통보를 받았다. 강씨는 최근까지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복지관, 종교단체 시설, 정신병원까지 웃돈을 줘가며 입소하려 했지만 모두 일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다.

강씨처럼 가장 돌봄이 절실한 최중증 성인발달장애인들이 역설적으로 장애인시설에서조차 쫓겨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24시간’돌봄의 짐은 온전히 가족들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2015년 기준 발달장애인은 21만855명으로 전체 장애인(249만408명)의 약 8.5%이다. 2011년 이후 전체 장애인 수가 매년 감소하는 데 비해 발달장애인은 약 7,000명씩 증가하고 있다.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전체 발달장애의 90%)와 자폐장애로 구분된다. 지적장애 4급 1명을 제외하고 발달장애인들은 모두 3급 이상 중증이다. 1급 5만9,412명(28.2%), 2급 7만3,435명(34.8%), 3급 7만8,007명(37.0%)이다.

전체 발달장애인의 78%가 성인이지만 장애인 거주시설, 직업교육센터, 재활시설에서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은 외면 받기 일쑤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사실상 사회적으로 방치된다.

장애인 복지시설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데, 관리 효율성ㆍ편의성을 이유로 중증 장애인들을 꺼리는 탓이다. 1급 발달장애인 아들(22)을 둔 박미경(46)씨는 “입소문 난 시설은 2~3년 전 대기자 예약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고, 경쟁률이 4대1인 곳도 있다”며 “문제아로 소문나면 주변 지역에서 받아주지 않아 센터에 사정하며 선물을 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사회복지시설 관계자는 “주간보호센터는 사회복지사 1명이 5~10명의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데 특정한 1명한테 공력을 쏟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지원제도가 있지만 보조인들 수가 적은데다 어느 장애를 돌보나 시급이 9,240원이다 보니 경증 장애를 선호한다. 서울에 사는 1급 발달장애인 이민수(25ㆍ가명)씨는 활동보조인 2명이 각각 2주가 안돼 “감당하기 힘들다”며 관뒀다. 이씨가 책상 등에 자신의 머리를 찧으며 자해하거나 집을 나가 무작정 주변을 떠도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같은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보조인을 겨우 구했다.

1급 발달장애인 아들(26)을 돌보는 이진섭(51)씨는 “같은 1급이라도 온순하면 재활시설도 이용하고 보조인도 쉽게 찾지만 장애가 심할수록 이용 가능한 복지서비스가 없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며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정부도 뾰족한 대책은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지역 재활시설의 관할 감독 권한은 각 지자체에 있다”며 “장애인에 대한 학대행위와 같은 명백한 범죄ㆍ불법행위는 관리 감독 대상이지만 어떤 입소자를 받느냐 결정하는 건 사설법인들의 자율적 운영권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진우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같은 장애 1급 안에서도 경중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어야 선별적 지원의 근거가 된다”며 “누구에게 가중된 지원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의 소외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치영 나사함발달장애인복지관 관장은 “전문 시설에서도 발달장애의 특성, 연령 구분 없이 입소자를 받아 개인별 맞춤 돌봄이 불가능하다”며 “최중증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전문 인력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최중증 판단 기준은 없으며, 학계나 장애인 사회에서 임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이다.

2015년 11월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에 따라 정부는 전국에 총 18개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개소하고 각종 사회복지서비스를 연결해주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지난해 권리구제를 신청해 서비스를 받은 장애인은 전국에서 총 145명에 불과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발달장애 당사자나 가족들이 적절한 정보가 없어 자의적으로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컸다”며 “시설에 대한 객관적 정보 제공이 이뤄지면 자정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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