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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간 원격협진 허용… 섬 등 취약지역 응급환자 ‘골든타임’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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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간 원격협진 허용… 섬 등 취약지역 응급환자 ‘골든타임’ 확보

입력
2016.08.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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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이 의사 지시 받아

응급처리 하는 것도 가능

전문약물 투여는 시범 시행 중

최우성(왼쪽 세 번째)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의사와 의사간 원격의료 시스템으로 백령도 소재 백령병원의 정진우(모니터 안) 공중보건의가 보내온 환자 CT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이 날 두 병원은 의료 취약지인 백령도에서 50대 남성이 계단에서 굴러 의식을 잃은 상황을 가정해 원격의료 시연을 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최우성(왼쪽 세 번째)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의사와 의사간 원격의료 시스템으로 백령도 소재 백령병원의 정진우(모니터 안) 공중보건의가 보내온 환자 CT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이 날 두 병원은 의료 취약지인 백령도에서 50대 남성이 계단에서 굴러 의식을 잃은 상황을 가정해 원격의료 시연을 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올 초 20대 남성 A씨는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 차량 전복사고를 당했다. 비장이 파열되고 배에 피가 고여 수술이 시급했다. 외과전문의가 없고 장비도 부족한 백령병원은 후송된 A씨를 헬기에 태워 인천 가천대 길병원으로 보냈다. A씨는 도착즉시 수술을 받고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A씨는 원격의료 덕에 이른바 골든 타임(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응급환자라도 큰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응급실에서 검사 등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수술을 기다리는 게 보통이지만, A씨의 경우는 이 과정이 생략됐다. A씨가 1시간20분 정도 헬기로 이송되는 사이 백령병원이 원격협진(의사 의사간 원격의료) 시스템을 활용해 길병원에 A씨의 상태를 미리 설명하고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임용수 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미리 받은 환자 정보를 토대로 수술실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면 수술 시간을 놓쳐 사망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의사와 의사(또는 간호사 등 의료진)간 원격의료 시스템은 이미 현실이다. 그리고 화상전화처럼 간단하다. 지난 9일 길병원에서 의사 의사간 원격의료 가상 시연을 참관해보니, 화상 캠과 모니터가 연결된 노트북으로 해당 웹사이트에 접속하기만 하면 가능했다. 백령병원에서 컴퓨터로 원격의료를 요청하자 길병원에 벨이 울렸고, 길병원에서 모니터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백령병원 의료진이 나타났다. 백령도에서 전송한 CT 사진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통신 질과 속도는 간간이 잡음이 끼긴 했지만 의사 소통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백령병원에 근무하는 정진우 공중보건의(비뇨기과 전문의)는 “좀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다른 진료과 의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굳이 후송을 안 해도 되는 상황도 판단할 수 있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원격협진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에는 고혈압 환자인 60대 B씨가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일이 있었다. 자던 중 갑자기 심장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해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지 못하는 상태(심실세동)가 된 것. B씨의 호흡이 평소와 다른 걸 감지한 가족은 곧장 119에 신고했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B씨의 심장이 멎은 것을 확인하고 길병원 응급의료센터 의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카메라가 달린 안경 형태의 기기를 착용하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영상을 보내자, 응급실에 있는 당직 의사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면서 의료지도를 차근차근 해갔다.

당시 당직을 섰던 장연식 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심전도를 확인해가며 전기충격요법(제세동)을 실시했고, 정맥로를 확보해 에피네프린(심장회복제) 아미오다론(항부정맥제)과 같은 약물을 투여하도록 지시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의료진이 빨리 개입함으로써 B씨는 이송 전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며칠 뒤 후유증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같은 병원 조진성 응급의학과 교수는 “골든타임에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충분히 시도하고, 약을 투여하고 병원으로 오면 심정지 환자가 살아서 퇴원하는 비율이 2~3배 가량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B씨의 사례 역시 현행 법이 허용하는 원격의료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구급대원(응급구조사)이 몸에 착용하는 영상기기 등을 통해 의사의 지시를 받아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것도 응급의료법에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구급대원이 항부정맥제와 같은 전문 약물을 투여하는 부분은 아직은 시범사업(스마트의료지도)에 속한다. 복지부는 지난해 9개 병원(19개 소방관서)에서 시범사업을 했고, 올해는 20개 병원(29개 소방관서)으로 참여 대상을 늘렸다.

현재 시행 상황만 놓고 보면 원격의료는 의료 취약지 환자와 응급환자를 진료하는데 성과를 내고 있다. 임용수 교수는 “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이 부족한 의료 취약지의 경우 원격협진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길병원을 포함한 7개 병원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502건의 원격협진을 했다”고 말했다. 스마트의료지도의 경우 지난해 8~12월 시범사업 결과, 심정지 응급환자가 병원 도착 전 스스로 호흡을 회복하는 비율이 이전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의사와 환자간 원격의료’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환자가 병원에 들르지 않고 집에서 장비를 사용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방식이라 의료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안무업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의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해 의료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비만환자의 신체ㆍ영양활동 코칭 등 그간 대면진료에서 하지 않았던 부분을 원격의료로 보완해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석일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의 경우 혈압과 같은 생체정보를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얼굴을 보면서 상의하고 격려하는 부분이 있다”며 “환자가 입력한 숫자를 보고 진료하는 게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원격의료를 확대하는 것보다 의료 취약지 응급환자를 빨리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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