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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지심(羞惡之心)과 죄의식

입력
2014.06.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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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뭇매와 정권의 눈살에도 끄떡 않는 문창극

기독교적 세계관에 비추면 부끄러울 일이 없을 듯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걸까.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왜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치를 모른 척하며 버티려는 걸까.

여론의 뭇매와 야당의 ‘총리 인준 원천 봉쇄’ 태세에 덧붙여 여당의 분위기도 일변했다. 어제 전당대회 대표경선 출마를 선언한 서청원 의원이 친박계 수장으로서 분명한 반대 입장을 선언하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초선의원 그룹을 비롯한 소장파는 물론이고 찬반의사를 명백히 표시하지 않은 중간그룹조차도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표결이 이뤄질 경우 당론투표 대신 크로스보팅(자유투표)을 실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중앙아시아 순방 길에 이런 분위기를 전해 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 재가를 21일 귀국 이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 순간 문 후보자는 버려진 카드다. 혹자의 관측대로 청와대가 여론 추이를 조금 더 살펴, 실낱 같은 희망에 기대어 임명동의안 통과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세월호 참사’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신감이 크게 흔들린 마당이고 보면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그런데도 문 후보자는 어제 자진사퇴 가능성을 일축하며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의욕을 보였다. 심지어 “정홍원 총리의 (국회 본회의)경제문제 답변을 열심히 보며 배우겠다”고까지 밝혔다. 사회부와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어 40년 넘게 언론인으로 일한 경력에 비추어 정치감각이 둔해서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의 ‘몽니’를 이해하는 데는 주관적 심리와 인식을 더듬는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는 자신의 진정(眞情)을 알아주지 않는 여론의 뭇매와 함께 부를 때와는 너무 달라진 정부ㆍ여당의 태도가 속상하고, 억울하고, 원통해서다. 그런 심리상태라면 자신은 물론이고 정권이 만신창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오기가 동하기 쉽다. 어차피 사인(私人)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굳이 점잔을 빼거나 ‘뒷일’을 가늠하며 정권의 처지에 배려할 일도 없다.

이런 일시적 심리상태와는 별도로 그의 자세에는 교회강연 등에서 일부가 드러난 기독교적 세계관의 또 다른 편린도 더듬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불가해한 일본군의 전시(戰時) 행동에 충격을 받아 일본문화와 집단의식의 뿌리를 탐구한 루스 베네딕트는 그 성과물인 국화의 칼에서 ‘부끄러움의 문화(Shame Culture)’에 주목했다.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서양전통의 기계론적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와 달리 개개인의 자의식보다는 주위의 눈길에 좌우되기 쉽다고 보았다. 부끄러움(恥)을 씻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덕목인 의(義)라고 여기는 것은 일본에 국한된 문화특성이 아니다. 일부 변용은 있지만, 유교문화권 공통의 문화전통이고, 따라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맹자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네 가지 덕성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씨앗(실마리)은 모든 사람의 타고난 성품에 준비돼 있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 의로움은 스스로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ㆍ수오지심)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이다. 따라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주위의 손가락질이 수치심을 일깨운다.

구미의 ‘죄의식’은 다르다. 주위의 손가락질과는 무관하게 정해진 규범을 어겼느냐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기독교적 ‘원죄’를 빼고는 형식적 규범의 위반이 없어 떳떳하다면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다. 문 후보자가 대형교회의 장로로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친숙하다면, 남의 손가락질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로마서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장16절)고 했다. 그의 말대로 ‘종교적 역사인식’을 밝힌 것이라면 부끄럽거나, 세상의 손가락질에 굴할 이유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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