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문선 기자

등록 : 2017.04.17 04:40
수정 : 2017.06.07 17:42

내게만 차가웠던 엄마, 이제라도 사랑받고 싶어요

[오은영의 화해] "아이 때 애착 욕구 못 채우면 평생 고통..엄마가 도와주세요"

등록 : 2017.04.17 04:40
수정 : 2017.06.07 17:42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엄마에게 늘 사랑받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엄마는 차갑고 무서운 사람이에요. 저한테만요.

어린 저를 귀찮아했어요. 안기고 싶어서 엄마 무릎에 누우면 밀쳐 내면서 “치대지 말라”고 매번 짜증을 냈어요. 엄마가 혼내서 울면 “네가 우는 소리가 제일 싫다”고 구박했어요. 엄마는 늘 제 단점을 찾아 지적해 자존심을 깎아 내렸어요. 수학 선생님인 엄마가 공부를 가르쳐 줬는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저능아도 너보다는 잘한다”고 몰아붙였어요. 제가 이기적이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라고 아빠에게 험담하는 것도 여러 번 엿들었어요. 엄마는 저에게 무관심했어요.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브래지어를 챙겨 주지 않아서 아빠가 먼저 얘기했을 정도예요. 저는 고기를 좋아했지만 엄마는 채식 위주로 식탁을 차렸어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자주 배가 고팠는데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어요.

엄마는 오빠에겐 잘해 줬어요. 오빠는 착한 아이, 저는 까칠한 아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엄마는 아빠와 친정 식구들에게도 다정했어요. 살면서 엄마와 만든 즐거운 추억이 거의 없네요. 딸 갖는 게 소원이었다는 아빠는 오빠보다 저를 더 많이 아꼈어요. 장남인 오빠에겐 엄격했고요. 하지만 늘 엄마의 사랑이 그리웠어요. 오빠처럼 사랑받으려고 오빠 말투와 행동을 따라하기도 했네요.

저는 당당하지 못한 어른이 됐어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좀처럼 반박하지 못하고 움츠러들어요. 모두 제 잘못 같아서요.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예요. 5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정말로 사랑하지는 않았어요. 남자친구가 언제 헤어지자고 할지 모르니 처음부터 마음을 닫기로 한 거죠. 그래도 혼자 남는 건 싫어서 남자친구가 이별 통보를 할 때까지 기다렸어요. 회사 사람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아요. 저를 대놓고 괴롭히는 상사가 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게티이미지뱅크

엄마도 외할머니에게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사랑이 부족한 엄마가 된 걸까요? 엄마가 맞벌이를 하느라, 공부하는 아빠 뒷바라지를 하느라 바빠서 저한테 그랬을까요? 최근 엄마와 해외 여행을 다녀왔어요.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모두 털어놓았지만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고 외면했어요. 그 뒤로 엄마가 저를 더 많이 불편해해요. 저는 여전히 엄마와 관계를 풀고 싶어요. 엄마가 기분 좋을 때 저에게 몇 번 부드럽게 대해 준 기억이 자꾸 떠올라요. 엄마에게 사랑받는 사람, 화목한 가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엄마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엄마에게 사과도 받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요?

(이재연씨ㆍ가명, 29세, 회사원)

“아이에게 엄마는 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일까요? 아이는 왜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할까요? 왜 항상 엄마를 찾고 필요로 할까요? 그건 아이가 살아남기 위한 본능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체온과 면역력, 생명을 유지하게 해서 생존하게 합니다. 물론 그게 아빠나 할머니 등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여기선 상징적으로 ‘엄마’라 부를게요. 엄마 혼자 양육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내가 살아남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대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애착’입니다. 대표적인 게 엄마와 아이의 관계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아이에겐 먹는 것보다 애착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를 돌보고 보살펴서 생존하게 해 주는 게 바로 애착이니까요. 애착은 아이에겐 죽고 사는 문제만큼이나 강력한 본능입니다. 아이가 울고 칭얼대고 매달리는 건 엄마에게 보내는 신호, 즉 애착을 요구하는 애착 행동입니다. 엄마로부터 사랑과 보호를 받음으로써 생존하기에 안전한 상태가 되려 하는 것이지요. 아이가 그런 신호를 보낼 때, 아이와 강력하게 결합돼 있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엄마는 제때 반응을 해 줍니다.

‘엄마랑 있으면 안전하고 즐겁네. 다른 사람과 있어도 안전하고 즐겁겠구나.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돌봐 주는 걸 보니 나는 가치 있는 존재구나. 엄마를 믿을 수 있으니 세상도 믿을만 하겠구나.’ 엄마와의 관계에서 아이는 이렇게 느낍니다. 엄마가 제대로 반응해 줘야 아이는 편안한 성격을 가진 어른으로 자랍니다. 대인관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 어른으로요. 반대로 엄마가 아이의 신호를 귀찮아하고 무시하거나 내킬 때만 반응해 주면 아이는 굉장히 불안해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재연씨 엄마는 반응해 주지 않았지요. 특히 재연씨한테는요. 엄마는 애착을 느끼게 해 주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요. 재연씨 얘기를 들어 보면, 재연씨는 조금 까다로운 아이이고, 오빠는 순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재연씨와 오빠의 ‘기질’이거든요. 기질은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는 생물학적 특성입니다. 엄마와 재연씨의 기질이 잘 안 맞았을 수 있어요. 그래서 엄마는 재연씨를 본능적으로 사랑하면서도 불편하고 거슬려 한 거지요. 엄마는 그런 걸 알지 못한 채 재연씨가 까칠한 아이니까 엄하게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양육 과정에서 기질 문제를 조절하고 균형을 맞추는 건 엄마의 책임이었는데도요.

엄마 본인도 기질이 까다로운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일부 감각도 예민한 것 같아요.특히 촉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누가 와서 안기고 비비고 달라붙는 걸 싫어해요. 그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자극이 불편해서 밀어내기도 하지요. 어떤 이유에서든 엄마에게 거부 당한 아이들은 이내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방법을 잘 몰라 혼자 놀게 돼요. 자기를 받아 주지 않는 엄마에게 화가 나지만 화를 내면 혼날까 두려워서 화를 삭이다가 결국 폭발하기도 하고요. 그런 엄마를 둔 재연씨는 살면서 엄청나게 불안하고 고통스러웠을 테지요. 재연씨가 회사 상사나 남자친구와 편하게 지내지 못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먼저 재연씨 어머니에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행복한 아이로 키우려면 엄마가 해 줘야 할 것이 굉장히 많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겁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운다 해도 때로 아이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게 부모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부모가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반드시 물려줘야 하는 건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건 엄마와 애착에서 생겨나는 건데, 어머니는 재연씨에게 그렇게 해 주지 못했어요. 신호를 보내도 응답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 재연씨가 배가 고프다는 얘기조차 하지 못했던 겁니다.

어릴 때 애착 욕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사람은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채우려고 합니다. 부모 곁을 잘 떠나지 못하기도 하고 남편이나 자녀 등 다른 중요한 사람들을 통해 채우려고 하기도 해요. 재연씨가 이제라도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금 어머니가 재연씨 옆에 있으니까요. 어머니가 재연씨를 사랑했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재연씨는 어머니와 관계에서 겪은 어려움이 커서 아직도 아파하고 있어요. 재연씨는 아이 때처럼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원합니다. 그 구멍을 채워 주세요. 부모는 대체 인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재연씨. 엄마와 관계에서 생긴 갈등과 아픔을 100% 채워 줄 수 있는 대상, 그래서 재연씨 상처를 치유해 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전문의를 만나 치료받는 걸 권할게요. 재연씨를 인간적으로 존중하면서 눈과 귀를 열고 제대로 반응해 주는 치료자를 만나세요. 그 과정을 통해 이유 없이 거절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또 편하고 즐거운 관계를 새로 경험하세요. 그래서 재연씨 마음의 빈 곳을 채우고 성장해 나가길 바라요.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테지만, 포기하지 말아요. 시간과 노력을 아무리 많이 들여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재연씨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재연씨는 소중한 존재로 태어났어요.

재연씨가 엄마에게 따지고 사과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엄마와 관계를 대립 관계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엄마와 관계를 풀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길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엄마는 예민하고 까다롭고 감정 발달이 잘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렵더라도 엄마와 거리를 두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열쇠를 가진 건 재연씨예요. 엄마와의 관계를 풀고 싶은 적극적 의지를 가진 사람이 바로 재연씨니까요.”

취재ㆍ정리=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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