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안부 배지 제작한 철원고·철원여고 학생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 때문에 '물망초'를 가슴에 단 일본군 위안부 배지를 만들었죠"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이 직접 위안부 배지를 제작, 온라인 판매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철원고와 철원여고 역사동아리 '집현전', '온고지신' 소속 학생 14명은 지난 2월부터 '위안부 알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집현전'의 회장 이찬희(18ㆍ철원고 3년) 군은 23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역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위안부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일이 전국적으로 커졌다"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역사 동아리의 노력으로 탄생한 가로 2.5cm, 세로 1.5cm의 작은 금속 배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단발머리 소녀의 흰 저고리에는 파란 물망초 모양이 새겨져 있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학생들의 바람을 담고 있다.
개당 2,000원에 판매하는 '위안부 배지'는 당초 200개를 제작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이 폭주해 2,000개를 추가 제작할 예정이다.
위안부 배지는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학생들의 손을 거쳤다. 디자인을 담당한 김효민(18ㆍ철원여고 3년) 양은 "배지를 보고 사람들이 쉽게 위안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소녀상'을 본 따 만들었다"고 말했다. 가슴에 달린 꽃은 동아리 학생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학생들은 지난 2월 봄방학부터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모였지만, 프로젝트는 더디게 진행됐다.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는 '수능 준비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군은 "친구들과 뜻을 맞추는 것보다 시간을 맞추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학업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이 군은 "동아리 학생 중에 역사 과목에 흥미가 있거나 역사 교사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다"며 "위안부를 잊지 않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한다"며 당차게 말했다.
'위안부 배지'는 이 군이 자신의 SNS 계정에 홍보 글을 올리면서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 처음에는 인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판매하려고 했지만, 해외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왔다. 이 군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는 단체 주문을 했다"며 "예상치 못한 큰 관심에 당황했지만, 그만큼 한일 위안부 합의나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아리의 학생이 모두 10대 청소년이었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생은 공부나 하라'는 시선과 맞닥뜨릴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군은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등 역사 속 굵직한 사건에선 항상 어린 학생이 주축이었다"며 "청소년도 사회의 주체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행보를 응원이라도 하듯 강원도교육청은 지난 17일 두 동아리의 활동 소식을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학생들은 판매 수익금을 위안부 할머니를 지원하는 '정의기억재단'과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오는 5월에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배지를 달아드릴 계획이다. 두 동아리의 학생들은 학교 신문 등을 통해 이번 프로젝트로 얻은 경험을 다른 친구들과 더욱 풍성하게 나눌 것이라는 포부도 남겼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이하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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