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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위협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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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위협의 역설

입력
2013.03.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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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무장공비 남파로 남한 사회가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불과 수 명의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몇 개 사단 병력과 경찰력이 동원되고 실제 교전에서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실만 아니라 득도 있었다. 대규모 대간첩작전은 6ㆍ25와 베트남전 참전 세대의 퇴진으로 실전경험이 부족해진 우리 군에 새롭게 실전경험을 쌓는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평소 훈련 강도가 아무리 세다 해도 우리 편의'대항군'을 상대로 하는 훈련은 실제 적을 향해 총을 쏘고 작전을 펼치는 실전경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냉전시대에 북한은 주기적으로 귀중한 인명을 희생해 가며 남한에 실전경험을 쌓게 해주었다. 최근 10여 년에 걸친 3차례 서해교전과 2010년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역시 우리 군엔 적지 않은 희생이 따랐지만 실전 경험을 쌓고 대비태세와 전력을 강화하는 기회로도 작용했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북한의 도발은 그런 측면에서 남한에 군사적으로 어느 정도 득을 안겨준 셈이다. 반대로 남한이 북한에 군사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키리졸브 한미합동군사연습도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군사 역량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한미가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면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군사대비 태세를 갖추고 훈련에 돌입해왔다. 이번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 11일 하루에만 북한은 전투기, 수송기 등군 항공기를 약 700회나 띄웠다고 한다. 평상시 훈련의 6~7배에 해당하는 출격 횟수다. 평소에는 유류 부족으로 거의 비행 훈련을 못하는 북한이다. 군 항공기 700회 출격 비용은 북한주민 전체의 하루치 식량 마련 비용에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 군사훈련은 북한에 가뜩이나 부족한 자원을 맞대응 훈련에 쏟아 붓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참새 걸음으로 황새를 따라야 하니 죽을 맛이지만 안 따라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바로 이런 효과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강화 등과 맞물려 북한의 내부 자원을 고갈시켜 북한 정권의 붕괴를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자원이 군사부문에 더 배분된 만큼 북한의 군사력은 그만큼 더 강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각종 물자 부족과 식량난으로 해이해진 군기를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북한군의 훈련 강화 및 대비태세 유지는 남한에 더 큰 위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과 같은 위기상황이 북한 내부에서 군사 우선, 선군 논리를 정당화하고 강화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민간부문은 한층 위축되고 주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번 키리졸브 훈련에 대응한 북한의 각종 군사훈련으로 장마당이 폐쇄되고 주민통제가 심해져 주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있다는 보도는 예삿일이 아니다. 늘 외부 위협을 과장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내부결속과 체제 안정에 활용해온 게 북한의 정권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과 군사부문 강화 등 또 다른 도발의 빌미로 작용하고 결국 우리의 안보가 한층 더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 역설의 악순환에 빠진다. 키리졸브 훈련도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도발 의지를 포기하게 하고 주민생활 향상 등 변화의 방향으로 나오도록 압박하는 것이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 쪽으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긴장과 불안을 증대시키는 악순환이 종당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무관심한 듯 해도 막연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늘었다. 어디선가 군사적 대응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위협의 말 주먹이 난무하는 통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냉각기를 갖고 어리석고 무모한 대결의 회전그네에서 내려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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