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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골 떡볶이 가게가 이사 갔다... 꼬마들의 눈물겨운 원정기

입력
2018.03.3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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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만두를 좋아하는지라, 동네에서 입에 맞는 만두집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안면을 트고 그릇깨나 비워 가며 단골로 삼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가 버리면 또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연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 주말마다 부러 짬을 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가기도 했다. 내 입맛을 맞춰 주는 식당이 가까이 있다는 건 그만큼 행복한 일이다. 주인의 인심이 넉넉하면 금상첨화. 아이들이라고 다를 까닭이 있을까? 이 그림책은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 마을 만나떡볶이 집이 이사를 갔다. 멀고먼 꿀단지마을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은 슬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 똘이와, 쟤 옥이는, 만나떡볶이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길은 멀고 험하다. 마을지도와 몇 가지 장비로 무장하고 우리는 원정 모험에 나선다. 만만찮은 장애물들이 가로막지만 기꺼이 헤쳐 나간다. 참을성과 준비운동과 튼튼한 심장이 돌파의 동력이다. 실제로는 약수터 옆 우거진 수풀과 엄마들이 출몰하는 동네 수영장과 그리 길지 않은 도보터널인, ‘무시무시 숲’과 ‘마녀탕’과 ‘악마의 입’을 지나, 용감한 우리는 마침내 꿀단지마을에 다다른다.

고생 끝에 마주한 그 집, 어묵꼬치와 튀김과 꼬마김밥이 즐비하고 빨간 떡볶이가 그들먹하니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황홀경이다. 떡볶이 아줌마도 기다리던 귀인을 맞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아… 아줌마, 늘 먹던 대로 주세요!” 귀인의 외침에 잰 손으로 담아낸 떡볶이 한 접시에 기다란 쌀떡과 네모진 어묵과 반으로 자른 삶은 달걀, 새로 썰어 넣은 듯 파릇한 대파조각이 푸짐하다. “맛있게 먹어.”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은 입가에 벌겋게 양념 칠을 한 채 두 눈을 꼭 감고 우주처럼 펼쳐진 무아의 지경을 헤맨다. “정말… ” “환상적이야!”

음식은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를 구성하는 바깥세계다. 그러니 음식을 가려내는 우리의 입맛은 보수적일 만하다. 입맛에 작용하는 것은 단지 미각만이 아니다. 음식을 받아들일 때 우리 몸은 시각과 후각에 청각과 촉각까지 동원하여 먹을만한가 아닌가를 감별한다. 거기에 또 하나 중요한 감각이 더해지니, 만든 이의 마음을 느끼는 ‘육감’이다. 육감적으로 똘이와 옥이에게 만나떡볶이는 필시 떡볶이 이상의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갔을 테지.

소중한 하루

윤태규 지음

그림책공작소 발행∙40쪽∙1만2,000원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만나떡볶이는 왜 우리 마을을 떠나간 걸까? 그림책은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아주머니가 눈물을 떨구며 떠나는 걸 보면 대강 짐작이 간다. 책 밖 세상에 비춰 봤을 때 아마도 근처에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가 들어섰거나, 장사가 될 만하니 건물주가 임대료를 대폭 올려 달랬지 싶다. 어찌 되었든 정성과 인심으로 단골들과 정을 쌓은 아주머니에게나, 값싸고도 입에 딱 맞는 간식으로 학교생활의 시름을 잊던 아이들에게나 딱하고 서글픈 일이다.

균일한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원치 않는 입맛의 통일을 종용하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열심히 장사해 가게의 값어치를 올려놓으니 임차인을 쫓아내는 임대 갑질 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야박스럽고 못마땅한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게다. 졸지에 빼앗긴 입맛을 찾아 모험에 나선 아이들의 ‘떡볶이 원정기’를 읽으며 떠올린 생각이 그렇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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