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 개편 반발하는 교수들에 이메일로 엄포ㆍ비하 도 넘어가
"문제 수두룩한데 사퇴는 무책임", 학내 구성원들 비판 목소리
21일 박용성 중앙대 재단이사장 사퇴의 직접적 발단은 지난달 24일 이용구 총장과 보직교수 20여명에게 보낸 막말 이메일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대기업이 대학 운영에 시장원리를 주입하다가 쌓인 부작용과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결국 중도 하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동안 박 이사장과 학내 구성원간 갈등은 첨예했다. 이날 공개된 이메일을 보면 박 이사장은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는 교수 공동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소속 교수들을 겨냥해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며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내가 쳐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이들을 ‘비데’에 빗대 ‘비데위(Bidet委)’로 표현하거나 ‘조두(鳥頭ㆍ새의 머리)’로 비하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이튿날 학생들을 사칭해 개편안에 찬성하는 현수막을 교내에 내걸어 비난 여론에 맞서라는 이메일도 보냈다.
양측의 대립은 지난 2008년 두산그룹의 재단 인수 이후 계속돼 왔지만 올해 2월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 나오면서 절정에 달했다. 당시 대학 본부는 ‘사회적 수요에 맞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2016학년도부터 기존 학과를 모두 없애고 단과대별로 신입생을 뽑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편안은 인문학 고사 등 학문 다양성을 저해하고 대학이 ‘직업인 양성소’로 전락할 것이란 학내ㆍ외의 거센 저항에 부닥쳤다. 교수 비대위는 물론, 총학생회, 각 단과대 학생회 등 학교 구성원들은 재단 측 개편안을 “학문 쿠데타”로 규정하며 규탄 성명을 잇따라 내놨고 박 이사장은 점차 궁지에 몰렸다.
중앙대는 지난 17일 2016학년도 입시 정시모집에 한해 모집단위를 학과에서 단과대로 광역화한다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양측 사이에 패인 갈등의 골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막말 이메일까지 공개되면서 박 이사장은 더 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날 사퇴 입장을 통해 “학사구조 개선안에 대타협을 이뤄내 이런 학내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사임을 택했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의 중도 하차로 두산그룹 인수 이후 지난 8년간 의욕적으로 추진돼 온 중앙대의 대학개혁 실험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앞서 중앙대는 2011년 유사ㆍ중복학과 통폐합을 통해 77개 학과를 47개로 축소했고 총장 직선제 폐지, 교수 성과급 연봉제 도입 등 철저히 시장원리를 학교 운영에 접목해 왔다. 이강석 교수협의회장은 “박 이사장이 취임 이후 급격히 악화한 재정건전성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무조건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재경 학생공동대표위원장도 “재단비리나 구조조정과 관련한 검찰 수사 등 남은 문제가 수두룩한데 박 이사장의 사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일단 이사회를 열어 수습책을 논의할 계획이지만 박 이사장이 그 동안 핵심 업무를 관장해 왔다는 점에서 후속 조치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제 개편만 해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중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학교에 대한 불신이 굳어질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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