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계성 칼럼]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생각할 때

입력
2014.08.18 20:00
0 0

“대화하고 만나라” 교황 간곡한 주문

김정은 왕따로는 北문제 해결 난망

확 달라진 접근법으로 상황 바꿔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 방한 일정을 마치고 18일 바티칸으로 떠났다.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내내 강조했던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는 큰 울림이 되어 오래 우리 곁에 남을 것 같다.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 솟듯 생겨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마지막 공식 일정인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한 이 당부는 우리 사회의 갈등주체 모두를 향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남북의 대립과 갈등 해소를 소망한 주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현실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 정부는 고위급 접촉 제의와 함께 북한 모자보건지원 방침을 공식화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환경ㆍ민생ㆍ문화의 3개 협력 통로를 제안했다. 북측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기로 했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5주기를 맞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명의의 화환과 조전문을 보내왔다. 그러나 모두 일방통행이거나 동문서답이고 쌍방향의 생산적 대화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측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런저런 제안을 하지만 북측 입장에선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북측의 대남 총책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17일 DJ 5주기 화환과 조전문 전달 차 박지원 의원 등과 만난 자리에서 “남측에서 하는 소리 가운데 반가운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북핵 및 미사일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입장 표명을 원하는 우리 정부로서도 북측에서 보내온 신호 가운데 반가운 게 하나 없기는 마찬가지다.

남북간 이렇게 겉돌기만 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힌트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공했다. 그는 17일 해미 성지에서 가진 아시아주교단 대상 강론에서 교황청과 수교를 맺지 않고 있는 국가들과의 대화를 제안했다. 이들 국가들과의 수교 의지를 밝혔다는 게 교황청 대변인의 설명이다. 대상국에는 말 할 것도 없이 북한이 포함된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미국 일본 등과 같은 주요국가가 수교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일본은 최근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고리 삼아 궁극적으로는 북한과의 수교도 염두에 두고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니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과 어떤 형태로든지 대화를 가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중국도 요즘은 북한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된 지 2년 반이 넘었는데도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가 사실상 김정은에 대해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여겨질 정도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 북한보다 남한을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김정은을 향해 직접 무엇을 제안한 적이 없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김정은은 주요 국가들에게 사실상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김정은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3대 권력세습 자체가 요즘 글로벌 상식에 맞지 않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우려와 경고를 무릅쓰고 장거리미사일 발사 및 핵 실험 등을 강행한 것이 김정은을 정식 국가지도자로 상대하기를 꺼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정은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 분명한 현실을 박근혜 정부도 모를 리 없다. 물론 고위급 접촉 등을 통해 일정한 선행 조건이 만들어지면 남북 정상회담을 검토하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선행 조건’을 고수하는 한 남북간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기 뭐 하다면 중국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북중 정상회담이 먼저 이뤄진다면 남북정상회담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가톨릭 세레명이 율리아나인 박 대통령도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을 경청했다.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대화하고 만나라”는 교황의 주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제는 정상회담이든 뭐든 확 달라진 접근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