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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김영란법 소동’이 이상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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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김영란법 소동’이 이상한 이유

입력
2016.08.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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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의 세부 사항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의사로만 살아온 나에게 이 논란은 조금 의아하다.

일단 의사가 직무와 관련해 남에게 이해관계를 미칠 수 있는 행위는 처방약이나 수술 기구 등을 선택하는 것 정도이다. 이 선택에서 의사가 접대를 받고 관련된 집단에 이득을 주는 행위를 ‘리베이트’라고 한다. 관련 법규인 ‘리베이트 쌍벌제’는 이렇게 정리한다.

“리베이트 쌍벌제란 리베이트로 인한 비용이 약값에 반영되어, 국민이 불공정 리베이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악순환을 근절시키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한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 등 각종 리베이트를 준 사람은 물론 받은 의료인도 리베이트 쌍벌제로 징역이나 벌금 또는 자격정지를 받는다.”

여기서 나는 리베이트가 존재하지 않거나, 의사들이 청렴하고 결백한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유경제활동을 하는 의사들에게 ‘국민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악순환’을 겪는다는 이유로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한 모든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은 무조건 불법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직무와 관련된 조금의 경제적 이득도 불법임을 당연하게 여겨 왔고, 어길 경우 실제로 처벌받고 있다.

이제 김영란법을 보자.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들이 대가성과 관계없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거나, ‘직무 관련인’에게 3만원의 식사, 5만원의 선물, 10만원의 경조사비를 넘게 받으면 불법이다. 나는 일단 여기서 한번 놀란다. 기본적으로 자유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인’에게 3만원 이하 식사와 5만원 이하 선물을 대접받는 것이 합법적이다. 심지어 이 법 전에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더 비싼 식사와 선물을 당당히 받아 챙길 수 있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연 11조원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전에는 연 11조원의 여러 분야 공직자들의 ‘직무 관련 이해관계’로 그들의 ‘업무 방향’ 결정에 있어 ‘접대를 주고받는 사람의 득’을 위해 쓰인 것이다. 그런데 이건 ‘국민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악순환’에 접어드는 행위가 지금까지 아니었다는 건가. 이상하다. 공직자에게 11조원이나 되는 남의 돈이 쓰이고 있었는데, 이만큼 합당한 표현이 또 없어 보인다. 같은 정의를 타 집단에만 씌우고, 자기 집단에는 지금까지 피해 오다가, 이제 적용하려 하자 경제 손실 운운하는 느낌이다.

접대하는 자는 상응하는 이득이 발생하므로 행한다. 접대를 받는 자는 자신의 직무 관련 선택만으로 부차적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 행한다. 이득 계층이 세분된 현대 사회에서 이 관계를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이를 방치하면 결국 관련되지 않은 자들의 피해로 귀결되므로 처음부터 이권을 주고받는 모든 행위는 불법이어야 한다. 이것이 ‘리베이트’며, ‘뇌물’이며, ‘접대’이다. 이를 규제하는 김영란법이 논란이 된다는 사실조차 참으로 신기하지만, 이전에는 이 법이 없었다는 것이 훨씬 더 나를 놀라게 한다.

그리하여, 제약회사 직원과 밥을 먹고 제약회사 직원이 돈을 내면 불법인, 지극히 평범한 논리를 가지고 살아온 의사로서 이 소동은 참으로 이상해 보인다. 이 법을 마주했을 때 공직자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취지보다 오히려 더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당연히 불법이어야 할 것들이 합법이었고, 그 규모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이며, 심지어 이를 서로 묵인하고 비호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소동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내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 같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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