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원 변한의원 대표원장
우리는 지금 정보 양이 날로 폭증하는 ‘빅데이터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난 2003년까지 쏟아낸 데이터 총량이 10억 기가바이트(기가는 10의 9승)인데 비해, 요즘 연간 데이터 생산량은 수 제타바이트(1제타바이트는 1조 기가바이트)에 이른다고 하니 그 증가 속도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과유불급이라고, 정보도 넘쳐나면 탈인 것같다. 요즘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의학지식을 꿰고 있다. 예전 환자들은 “선생님, 잘 좀 봐주세요!”라고 말문을 열었는데 요즘은 “왜?”라는 물음으로 진료를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종편이다 인터넷이다 해서 쏟아내는 정보들이 때론 외려 혼선을 주고 있다. 당뇨병 환자에서 고기 섭취 여부가 단적인 예다. 이에 대해 ‘먹어야 한다’, ‘아니다’라는 엇갈린 주장이 동시에 나오고 있는데, 환자 입장에서 ‘멘붕’이 오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필자 집안은 5대째 한의원을 운영해 오고 있다. 필자의 고조부는 고종 황제의 어의(御醫)셨다. 고조부는 어의 자리에서 퇴임한 뒤엔 고향인 충북 영동으로 낙향해서 거기서 한약을 재배하고 아픈 이들도 돌보셨다. 의료시설이 변변찮던 시절이라 한의원이 응급환자까지 떠맡는 종합병원 역할을 했다 한다. 당시 염증으로 부풀어 오른 종기는 침으로 째고 상처가 이내 아물도록 느릅나무 뿌리를 베어 껍질을 벗기고 거기에 피마자 씨를 짖이겨 붙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큰 상처를 꿰매지도 않았다니 것이니 큰일 날 소리지만 당시는 성형보다는 사느냐 죽느냐가 더 심각한 문제였을 테다. 또 중풍 환자가 생기면 십리길 멀다 않고 달려가 환자를 등에 업고 데려와 밤샘 진료를 했다 한다. 지금은 대형병원에다 응급실도 많고 자가용이 집집마다 있는 시대이니, 드라마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필자가 5대째 한의원을 운영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 반응은 대개 두 갈래다. “와우! 너무 좋겠네요”라는 말이 하나이고, “비방이 많겠네요?” 라는 물음이 다른 하나다. 비방(秘方)이란 과연 뭘까. 많은 환자를 보면서 쌓인 숱한 실패 사례의 누적이 비방이라면 비방이 아닐까. 거듭된 실패를 통해 알게 된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는 방법 말이다.
똑같은 증상에 대해 똑같은 약 처방을 해도 어떤 분은 효과가 있고 어떤 분은 효과가 없다. 의료인들이 숙명처럼 마주하는 고민거리 중 하나다. 그런데 여기서 한의학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바로 체질이다. 한의대 재학시절 사상의학 교수님은 전체 학생을 한 줄로 서게 한 뒤 즉석에서 맥을 짚고 체질검사를 해주었다. 체질 공부에 매달려 적지않은 효과를 봤다. 하지만 여전히 부작용이 있는 분이 있었다. 약을 바꾸거나 환불을 해주었다. ‘체질진단에도 오류가 많구나’라는 생각에 한때 그만두려고도 했다. 체질 진단법은 맥상을 보는 방법, 체형을 보는 방법, 설문지를 통한 통계 이용법, 오링 테스트를 통한 방법, 응용근신경학의 뇌를 이용한 체질 방법 등 여러 갈래다. 필자는 최종적으로 응용근신경학을 이용한 방법을 통한 체질 진단법을 이용하고 있다. 뇌에는 많은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 음식물을 입에 넣었을 때 뇌의 두정엽에서 맛을 감지하고 그 반응이 바로 근육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본인한테 맞으면 힘이 세지고 맞지 않으면 힘이 빠지는 반응으로 진단을 내리므로 그 결과 값이 객관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체형을 통한 진단 방법은 다이어트를 하면 살이 빠지기도 하고 다이어트를 잘못하면 살이 찌기도 하기 때문에 현대인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에 ‘치병필구우본(治病必救于本)이라는 말이 있다. 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반드시 근본원인을 찾으라는 뜻이다. 만일 소화가 안 되고, 신경이 예민하고, 손발이 차고, 관절에 통증이 있다면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까. 일반적인 처방은 소화제에 신경안정제, 진통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약을 주는 것이다. 체질을 안다면 여기에 맞는 처방을 가미할 수 있게 된다. 체질 진단을 통한 식이요법과 한약처방은 비교적 효과가 커서 효과를 제법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치료가 잘 안되는 이들이 여전히 있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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