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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이 임정 청사를 재개관한 이유

입력
2015.09.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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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회고할 때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중국인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복원하고 전시하는 취지다.”

최근 재개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하이 청사를 찾았을 때 3층 전시실 입구에서 본 문구다. ‘우리’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이 이곳을 새 단장한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중국이 한국을 도왔던 사실을 잊지 말란 이야기다. 전시실 끝엔 아예 ‘중국의 지원’이란 문패를 단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안내문엔 “당시 중국 정부는 임시정부의 당ㆍ정ㆍ군 운영비와 독립 운동가의 가족 생활비 등을 지원했다”며 “충칭(重慶) 시기에는 임시정부의 정무비 지원이 6만위안에서 300만위안까지 증가했고 1945년 김구 등 임시정부가 환국할 때에는 법정 지폐 1억원 외에도 20만달러를 원조했다”고 쓰여져 있었다. 설명문은 “27년에 걸친 세월 동안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국민의 큰 지원을 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생색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공산당이 아니라 장제스(蔣介石)의 중국국민당이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국공내전 끝에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내고 대륙을 지배하게 된 공산당은 이제 국민당의 임정 지원까지 마치 자신들의 공적인 양 포장하고 있다. 국민당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기가 막힐 역사 왜곡이다.

중국이 된 ‘중공’이 아니라 ‘중화민국’을 공식 국호로 쓰는 대만에게 고마워하자는 이야길 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 장제스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무비를 지원하고 환국할 때 20만달러까지 원조한 것도 임시정부를 앞세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게 역사학계 지적이다. 장제스가 한반도까지 삼키려는 야욕이 있다고 간파한 당시 플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임시정부를 승인하자는 장제스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는 장제스의 외교 고문이었던 오원 래티모어의 서신에서도 확인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장제스만 한반도를 욕심 냈을까. 가능한 한반도를 중국 영향력 아래 두고 싶어 한 것은 역사 이래 대륙 통치자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마오쩌둥이 개국(신중국 성립) 1년 만에 국내외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1950년 굳이 한국전쟁에 끼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정전협정으로 항미원조(抗米援朝ㆍ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의 명분이 사라진 후에도 북한에서 인민해방군을 철수시키는 데 소극적이었다. 당시 40만명이던 북한군을 10만명 이하로 줄이고 공군과 탱크 부대는 갖지 말라고 북한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남북한 국력이 뒤바뀌자 한 때 북한과 피로 맺어진 관계였던 중국은 1992년 남한과 수교, 북한에게 배신감을 안겨줬다. 북한이 핵개발에 본격 나선 것은 이 때의 충격 때문이란 주장도 없잖다.

지난 3일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함께 오른 것에 대해 한중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는 일각의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한반도의 이익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이다. 중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다 마찬가지이다. 사실 긴 역사 동안 늘 중국은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어떤 경우에는 북측의 지도자를 지원하고, 어떤 때엔 남측의 지도자를 옆 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상황은 언제든 또 다시 바뀔 수 있다. 한중 관계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며 취해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지금이 중국의 본색을 가장 경계해야 할 때는 아닌지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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