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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 분립 위협 판단하고도… 책임자 없다는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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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 분립 위협 판단하고도… 책임자 없다는 사법부

입력
2018.05.28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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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주시 재판 거래 정황

“정부에 우호적인 판결” 문건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조사 거부

국민 사법불신 깊어질 듯

김명수 대법원장 곧 대책 발표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작권 한국일보]새롭게 밝혀진 ‘양승태 법원행정처’ 주요 권한 남용. 박구원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새롭게 밝혀진 ‘양승태 법원행정처’ 주요 권한 남용. 박구원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내부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청와대가 주시하는 재판을 거래 수단으로 삼았던 정황이 드러났다. 대법원 스스로 “삼권(입법 사법 행정) 분립을 위협할 권한 남용”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그러나 관련자 법적 책임도 묻지 않고, 윗선 관여 여부는 못 밝히는 등 자체 조사의 한계는 뚜렷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 처장)이 지난 25일 공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양 대법원장 재임 때 법원행정처는 청와대가 민감히 여기는 사안을 두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골몰했다. 법원행정처는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직을 유지하던 지방의원 퇴출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정소송(의원 직위 상실 확인)을 내는 방법을 기획했다.

2015년 2월 작성된 이 문건 파일명에는 ‘[BH]’(청와대)가 적혔다. 소송 제기 후보지역은 ‘보수적 색채가 강한 울산이나 경남’ 식으로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다. 사법 수뇌부 스스로 ‘외부에 알려지면 감당하기 힘든 파장이 있음’이라 적었다. “우호적 관계 유지 차 청와대에 적절한 때에 제시하려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특조단 판단이다. 통진당 청소는 박근혜 정부 기조였다.

선고 전 재판에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의 퇴직처분 취소 소송을 맡은 전주지법 재판장을 상대로 사법연수원 동기인 행정처 판사가 ‘잠정적 심증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문건(2015년 9월 작성)이 나왔다. 국정감사 등을 고려해 선고를 연기해달라는 주문도 들어갔다.

법원행정처가 노골적으로 ‘정부에 우호적인 판결이 있도록 협력해왔다’는 문건도 공개됐다.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2015년 11월 쓴 문건으로, ‘사법부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려 최대한 노력해왔다’라며 ‘1. 과거사 정립(국가배상 제한) 2. 자유민주주의 수호(이석기, 원세훈 사건 등) 3.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통상임금 등) 4. 노동개혁 기여(KTX 여승무원 등) 5. 교육개혁에 초석이 될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이 이에 해당’이라 적혀 있다.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 불허의 돌출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는 심각한 수준의 대목도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대법원과 별도로 단순 3심 사건 재판)’ 도입을 위한 이런 무리수는 더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건 판결 역시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 대외비인 전교조 문건에는 대법원이 정부 요구대로 법외노조로 만들어야 BH와 대법원 양측에 ‘윈윈’ 결과라는 검토 의견이 실렸다. 판결 상황별 청와대와 대법원의 이해관계를 표로 분석해 경우의 수를 따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상고법원을 밀었던 최종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 조사는 서면으로도 이뤄진 게 없이 마무리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조사를 거부했다. 결국 1차 진상조사 때처럼 임 전 차장 등 고위 간부의 비위 정도로 결론 내고 일부 판사 징계만 있을 예정이다. 문건 작성자 등의 해명을 듣는 선에서 조사가 주로 이뤄져 윗선 조사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 형사부 부장판사는 “결국 적당한 ‘수습’ 쪽으로 마무리됐다는 인식이 법원 안팎에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국민의 사법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만간 후속대책을 발표한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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