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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란 이유로, 세월호 희생 차별받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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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란 이유로, 세월호 희생 차별받아서야”

입력
2017.04.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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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중편소설 '세월'을 출간한 작가 방현석은 "책 인세와 판매수익은 세월호 참사 진실을 규명하는 데 쓰도록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5년 만에 중편소설 '세월'을 출간한 작가 방현석은 "책 인세와 판매수익은 세월호 참사 진실을 규명하는 데 쓰도록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유대인들이 한 회당에 모여 고해했다. 먼저 랍비가 외쳤다. “신이 보시기에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어 부유한 장사꾼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저 또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자 평범하고 가난한 유대인이 일어나 선언했다. “오, 신이여,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말을 들은 랍비와 장사꾼이 불평한다. “제깟 게 뭐라고 저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중기 대표작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원제 ‘Less than nothing’)에서 이 농담을 빌어 소수자 내부에서도 차이와 체계, 차별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실제로 순수한 없음에 이를 수 있으려면 이미 무엇인가여야 한다.”

중견 소설가 방현석이 세월호 참사 3주년을 앞두고 참사 희생자인 베트남인 판응옥타인과 그 가족을 모델로 한 소설 ‘세월’(아시아)을 냈다. 기울어진 세월호 속에서도 “더 기울어진 방에 갇힌 베트남 여인과 그 가족”(문학평론가 정은경)은 ‘없음 이하의 무엇’처럼 “애도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전형으로 비춰진다.

12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판응옥타인씨 사연을 듣고 한동안 뜸했던 동료들을 모아 베트남에 남은 가족들을 돕기로 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가족을 찾으러 왔을 때 ‘(보상금을) 얼마나 받아가냐?’는 식으로 보더라”며 “슬픔마저 차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소설을)쓰게 됐다”고 말했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회장을 지낸 작가는 ‘존재의 형식’, ‘랍스터를 먹는 시간’ 등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꾸준히 써왔다.

소설은 베트남 여인 린을 한국으로 시집 보낸 아버지 쩌우의 시선으로 세월호 참사를 바라본다. 린은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고 아들 딸도 낳았다. 베트남전쟁의 전사였던 아버지와 장인을 둔 쩌우는 딸이 나이 많은 사위와 국제결혼 한 것을 못 마땅해 하지만 성실한 그들의 모습에 마음을 열고 딸 부부를 초대한 뒤 집을 수리하던 중 세월호 참사를 접한다. 다섯 살짜리 손녀만 구조됐고 사위와 손자는 미수습자 명단에 올랐다. 린은 시신으로 발견되고, 쩌우는 ‘유가족 되기’라는 끔찍한 희망을 품고 한국을 찾는다.

“사실과 허구를 9대 1의 비율로 썼다”는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특징적 현상, 물질중심주의에 투철해진 가치체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모델이 된 판응옥타인씨의 아버지는 참사 후 1년 간 시신을 기다리다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홀로 살아남은 손녀는 아이의 고모가 돌보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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