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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준이에게 온' 첫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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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준이에게 온' 첫 사랑'

입력
2017.05.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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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지켜라! 뿅가맨

윤지회 글, 그림

보림 발행ㆍ40쪽ㆍ1만2,000원

“다섯 평생 이렇게 멋진 로봇은 처음이에요." 준이의 애원에도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보림 제공
“다섯 평생 이렇게 멋진 로봇은 처음이에요." 준이의 애원에도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보림 제공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도 나무들은 앞다퉈 가지를 뻗는다. 초록이 짙어진다. 꽃들이 릴레이를 벌인다. 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이다.

다섯 살 준이가 엄마를 따라 마트에 갔다. 마트에선 따끈따끈한 신상품, 최신 모델의 로봇 장난감 ‘뿅가맨’ 판매 행사가 한창이다. 이름도 참 잔망스런 뿅가맨이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 대열에 합류했다. 날렵한 투구, 우람한 어깨, 큼지막한 주먹, 반짝이는 빨간 몸통에 선명하게 새겨진 승리의 표식 V. 준이의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다섯 살은 사랑에 빠지기 쉬운 나이다.

하지만 엄마가 꿈쩍 않는다. “다섯 평생 이렇게 멋진 로봇은 처음”인데, 집에 비슷한 게 잔뜩 있단다. 지금 사면 뿅가맨 가면까지 준다는데. 치마꼬리를 붙잡고 눈물 콧물을 쏟아도 소용없다. 아, 무정한 엄마.

불황이라지만 로봇 장난감 시장은 여전히 승승장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어 아이들을 홀린다. 터닝메카드니 헬로카봇이니 종류도 많고 시리즈도 많아 이름조차 제대로 외우기 힘든, 어른 눈엔 그게 그거 같으나 아이 눈엔 하늘과 땅 차이인 장난감 때문에 아이와 부모는 날마다 전쟁을 치른다.

윤지회의 그림책 ‘뿅가맨’은 누구나 쉬이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 참으로 실감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명랑한 색조와 경쾌한 리듬에 실어 담백하게 펼쳐 보인다. 대담한 구도와 장난감 패키지를 연상시키는 색상 연출이 인상적이다. 카탈로그처럼 꾸민 표지도 재미를 더한다.

유치원 버스에서도 뿅, 놀이공원 가는 길에도 뿅뿅, 동물원에서도 뿅뿅뿅. 온종일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뿅가맨 때문에 안달복달하는 아이의 애절한 러브스토리, 그리고 더욱 화려한 새 로봇 ‘왔다맨’의 유혹.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다들 내 얘기, 우리 집 얘기라 하겠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공감이다.

이 책은 말갛게 닦아놓은 거울 같다. 카드 결제일도 채 지나지 않은 장난감이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보며 속 터지는 부모 심정을 모를 리 없건만 욕심 부리지 않고 딱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 어린 독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고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깨끗한 거울처럼 제 모습을 그대로, 고스란히 비춰 보여주기만 한다. 아이들에겐 소비니 절제니 자본이니 상술이니 하는 어른의 언어 대신 자신들의 언어가 필요할 테니까. 그걸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야 할 테고. 때론 너무 느려서 답답할지라도 말이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최정선ㆍ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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