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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영화가 설날까지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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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영화가 설날까지 걸렸네

입력
2018.02.21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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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맨’은 서사의 밀도가 아쉽다는 평에도 화려한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장기 상영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위대한 쇼맨’은 서사의 밀도가 아쉽다는 평에도 화려한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장기 상영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가늘고 길게. 스테디셀러의 조건이다. 극장가에서도 이 생존법칙은 통한다. 신작 영화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박스오피스에서 ‘스테디셀러 삼총사’가 조용하지만 쏠쏠하게 ‘장기 흥행’을 하고 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관객수는 어느새 ‘중박’ 수준에 다다랐다. 때때로 ‘역주행’이라는 행운과도 마주했다.

설날 영화 공습에도 끄떡 없네

19세기 쇼 비즈니스 세계를 그린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은 두 달 넘게 스크린에 걸려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해 12월 20일 개봉했는데 설날이 지나서까지 상영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강철비’와 ‘1987’이 진작에 자취를 감춘 것과 대조적이다. ‘위대한 쇼맨’은 한국 영화들에 밀려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고, 100만 관객 돌파(1월 6일)까지 18일이나 걸렸다. 그럼에도 관객 동원은 꾸준했다. 평일 좌석점유율 20%대, 주말 좌석점유율 30~40%대를 유지하며 1월 한 달간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머물렀다. IPTV로 볼 수 있게 된 2월에도 평일 평균 2,500명, 주말 평균 5,000명이 극장을 찾아가 이 영화를 봤다. 19일까지 누적관객수가 138만5,433명(영화진흥위원회)에 이른다.

뭉클한 가족애를 담아낸 ‘그것만이 내 세상’도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효자상품’이다. ‘신과 함께-죄와 벌’이 기세등등하던 지난달 17일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지만 일주일 만에 1위로 올라섰고, 지난달 31일 신작 ‘염력’에 잠시 자리를 내줬다가 또 정상을 되찾았다. ‘역주행’은 이 영화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난 9일에는 주연배우 윤여정, 이병헌, 박정민이 직접 관객을 만나는 300만 흥행 이벤트도 열었다.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도 지난달 11일 개봉해 벌써 한달 넘게 상영 중이다. 그 기간 박스오피스 순위도 3~4위로 높았다. 방학을 맞은 가족 관객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관객수도 343만9,892명까지 불어났다.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피아노 천재 주인공의 오케스트라 협연 장면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음악 영화로 느끼게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피아노 천재 주인공의 오케스트라 협연 장면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음악 영화로 느끼게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블랙팬서’와 한국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골든 슬럼버’ ‘흥부’ 등 설날 영화들이 한판 격돌을 벌인 박스오피스에서도 이들 삼총사는 10위권에서 살아남았다. 이쯤 되니 크리스마스 영화인지, 새해 영화인지, 설날 영화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무엇보다 좌석점유율이 높았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적은 스크린에서 상영됐지만 내실이 알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과 ‘코코’는 설 연휴였던 15~18일까지 나흘간 각각 8만1,000명과 9만명을 불러모았고, 17일에는 좌석점유율이 46%까지 올라갔다. ‘위대한 쇼맨’도 좌석점유율 31~38%대를 유지했다. 좌석점유율만 보면 38~51% 사이를 오갔던 ‘블랙팬서’에 뒤지지 않는다. 좌석점유율은 스크린 배정에 중요한 기준이다. 황재현 CGV 홍보팀장은 “전체 평균 좌석점유율이 20% 중후반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봉한 지 한두 달 지난 영화의 좌석점유율 30%를 웃도는 건 상당히 유의미한 수치”라며 “좌석점유율이 높아 당분간 상영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새해 신작부터 설날 신작까지 연달아 공습이 이어졌는데도 생명력이 꺾이지 않은 데는 대진 운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다른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신작들이 다양했지만 감동과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빠져 있었다”며 “가족 영화이면서 특별히 시기를 타지 않는 ‘그것만이 내 세상’과 ‘코코’까지 관객의 선택지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보면 경쾌한 남미 리듬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공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보면 경쾌한 남미 리듬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공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따로 있다

극장과 배급사는 스테디셀러 삼총사가 장기 흥행한 가장 큰 이유로 ‘입소문’과 ‘관람 환경’을 꼽는다. ‘위대한 쇼맨’의 경우, 뮤지컬 영화 특성상 음악과 퍼포먼스를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하기에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소문났다. 배급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마케팅 담당자는 “멀티플렉스 사운드 특별관을 알리려는 극장의 니즈와 뮤지컬 영화라는 특색이 잘 맞아떨어진 것도 스크린 유지에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반복관람도 주효했다. CGV리서치센터가 집계한 ‘위대한 쇼맨’의 재관람율은 5.7%에 달했다. 100명 중에 6명은 이 영화를 한 번 더 봤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티켓을 또 사서 다음 회차에 곧바로 재관람했다는 후기도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과 ‘코코’도 뮤지컬 영화는 아니지만 음악을 중요한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선 피아노 천재 주인공의 오케스트라 갈라쇼 장면이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코코’도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이 주인공이라 OST가 화려하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콘서트를 보는 듯한 갈라쇼 장면에 대한 관객평이 특히 좋았다”며 “풍성한 들을거리가 극장 장기 상영에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삼총사의 선전 이면에는 한국 영화의 빈곤함이 존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만큼 볼 영화가 없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특히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판타지 영화 ‘염력’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반사이익을 봤다는 해석도 있다. 황재현 팀장은 “개봉 편수가 증가하고 있어 스크린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워진 환경”이라며 “이례적인 장기 흥행을 이어가는 세 영화가 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고 평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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