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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영혼 없는 공무원

입력
2017.08.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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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었다.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에서 국정홍보처의 변신이 논란이 됐다. 참여정부 브랜드 홍보에 앞장서 오다가 갑자기 당선인 생각 중심으로 브리핑이 바뀐 게 사달이었다. 당시 배석했던 홍보처 고위간부는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했다가 파문이 일자 “관료는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찍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개별적인 인격이 아닌 제도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움직이는 게 근대 관료제도의 특징”이라고 규정한 데 비춰 보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 정권이 바뀌면 거의 예외 없이 공무원의 ‘영혼’이 도마에 오른다. 베버가 말한 제도적 합리성과 전문성을 의심케 하는 관료집단의 태도 변화 탓이다. 새로 들어선 정권의 뜻에 따라 이전 정부의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과연봉제 폐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공영방송 정상화 등도 전 정부 정책 기조와 180도 달라 해당 정책 책임자들의 '영혼'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공분을 산 전 정부의 행태로 보면 적폐 청산, 비정상의 정상화 측면도 분명히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새 정부 첫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며 국민과 함께 항상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고, 국민의 뜻을 잘 받드는 정권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상황이 다르다면 상명하복에 익숙한 공무원들에겐 문 대통령의 주문이 어려운 숙제가 될 수밖에 없다. 80% 안팎 고공지지율을 누리고 있는 문 대통령은 이 점에선 자신이 있는 것 같다.

▦ 그러나 선악과 옳고 그름을 떠나 신념과 생각이 제각각인 다원 사회에서 공무원이 추구해야 할 영혼의 기준을 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제 역시 정치 권력의 부침에 따라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권교체 때마다 공무원들의 자존감과 사기를 꺾는 영혼 부재 논란을 끝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영혼 없는 공직자를 양산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영혼 없는 공무원 방지법’ 도 그 하나일 수 있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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