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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그렇게 인간의 대가 이어진다

입력
2018.03.0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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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시간 저편 빈 벤치의 늙고 허름한 아버지가 되어 있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슈퍼맨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시간 저편 빈 벤치의 늙고 허름한 아버지가 되어 있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자식 키우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게 벅차서라기보다, 제대로 잘 사는 사람으로 키우기가 힘든 까닭이다. 제대로 잘 살기는 나도 어렵잖은가. 그래서 늘 갈등하고 고민한다. 어디까지 간섭하고 어디부터 내버려 둬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스스로 터득하게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돌봐주고 언제부터 제힘으로 서게 해야 하는지...

속을 알 리 없는 자식은 부모 속을 썩이고, 속상한 부모는 애먼 소리를 한다. “너하고 똑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 봐라.” 그러나 헛된 말이다. 미래는 실감할 수 없는 것이니. 민망한 말이기도 하다. 과거엔 나도 야속한 자식이었으니. 깨닫자 뉘우침이 밀려온다. 진즉 잘할 것을...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내 부모는 나로 하여 늙어 버렸거나, 더는 세상에 안 계시기 일쑤다.

끝없이 되풀이될 쓸쓸한 인간사다. 그러나 인간사 쓸쓸하기만 하면 어찌 살 수 있으랴. 훈훈한 인간사도 되풀이되니,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그렇다.

이야기의 화자는 조그만 사내아이. 시점은 1인칭이다. “소개할 사람이 있어. 바로 우리 아빠야!” 아이의 얼굴에 자랑이 가득하다. “이제부터 나는 아빠한테 많은 걸 배우게 될 거야. 우리 아빠는 못하는 게 하나도 없거든.” 그렇다. 아빠는 자전거 타기도, 물수제비뜨기도, 연날리기도, 헤엄치기도 잘하므로 나에게 가르쳐준다. 서툰 나를 격려해 주고 언제나 뒤에서 지켜봐 준다. 덕분에 나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이윽고 많은 것을 잘 하게 된다.

나의 아버지

강경주 지음

그림책공작소 발행ㆍ52쪽ㆍ1만2,000원

이제 나는 두 손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고, 물수제비를 여섯 번이나 뜰 수 있으며, 연 세 개를 한꺼번에 날릴 수도, 어려운 나비헤엄을 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자 나는 아빠를 잊는다. 그러다 자만하여 실수를 한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잘못 던져 튕긴 돌에 이마를 맞고, 연줄을 끊어 먹고, 다리에 쥐가 난다. 그제야 나는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를 찾아 뒤돌아본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크고 작은 성취와 실패를 겪는 동안 세월은 흘러, 아빠는 이제 낙엽처럼 쌓인 시간의 저편 빈 벤치에 늙고 허름한 아버지가 되어 앉아 있다. 그가 작아진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이제는 나보다 네가 뭐든지 잘하는구나.” 나는 그 말이 서운하여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아니에요, 아버지... 전 아직도 모자란 걸요.” “고맙지만 그 말은 사양하마. 이제는 자전거 타는 솜씨가 이 애비보다 훨씬 낫구나. 네 옆의 꼬마도 그렇게 생각할걸?”

옆을 보니 한 꼬마가 나를 올려다본다. “아빠, 나도 아빠처럼 자전거 잘 탈 수 있어요?” 그제야 나는 깨닫는다. 눈물을 맺은 채 꼬마에게 말한다. “그럼! 아빠는 못하는 게 없어. 자전거도 물수제비도 연날리기도 수영도 모두 다 할 수 있단다.” 그런 나를 꼬마가 세상에 소개한다. “우리 아빠는... 정말 대단한 분이야.” 꼬마의 얼굴에 자랑이 가득하다.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사이에서, 내가 깨달은 건 무엇이었을까. 짐작컨대 이런 것, ‘아버지도 넘어지는 실수를 하고, 무릎 깨지는 실패도 하였겠구나. 든든한 아빠를 찾아 돌아보았다가 허름한 아버지를 발견했겠구나. 그렇게 비빌 언덕을 잃었으나, 스스로 언덕이 되었겠구나. 어린 내가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어느 지난날 아버지도 그리 깨달았으리라. 어떤 훗날에 꼬마도 그리 눈물을 맺으리라.

인간사는 끝없이 되풀이된다. 뒤늦은 후회도, 때맞춘 깨달음도. 그렇게 사람이 살아진다. 인간의 대가 이어진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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