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ㆍ관계 등 요직 물망에 오르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대학의 석좌교수 또는 초빙교수 경력이다. 컴백을 노리는 정ㆍ관계 출신들의 필수코스로 여겨질 정도다. 본래 석좌교수는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석학을 초빙해 교육과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다. 미국 영국 등에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은 숱한 석학들이 노벨상 수상 등의 업적을 냈다. 국내에선 카이스트가 1985년 처음 도입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취지가 변질돼 남발되고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형국이다. 초빙교수 역시 비전임 교수에 대한 느슨한 임용ㆍ관리 규정을 틈타 본래 취지와 달리 운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배재정(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ㆍ공립 및 법인 대학 31곳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석좌ㆍ초빙교수의 무분별한 운용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주대와 한국체대를 제외한 29곳에서 석좌ㆍ초빙교수 1,216명을 두고 있는데, 교육ㆍ연구 종사자가 아닌 기업임원(13.2%), 고위공직자(11.2%), 정치인(3.6%), 언론인(2.5%) 출신 등이 36%(442명)에 달했다. 이들 비율이 50%를 넘는 곳도 10곳이나 된다.
물론 대학이 사회경험이 풍부한 명망가를 모셔오는 것을 무조건 탓할 순 없다. 문제는 이들의 역할이다. 이들의 평균 강의시간은 주 2.5시간에 불과하고, 58%는 아예 강의를 하지 않았다. 연구 성과물을 낼 의무도 없다. 반면 등록금 등으로 지원하는 연봉은 최고 1억원에 달한다. 모대학 석좌교수인 전직 국회의장은 지난해 강의 한번 하지 않고 5,000만원을 받았다. 임용ㆍ관리 규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자격기준이 있다지만 ‘총장이 인정하는 자’같은 예외규정을 두고 있어 얼마든지 심사과정을 비켜갈 수 있다.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립대학의 실태는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지난해 한 여권인사는 당내 돈봉투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사면된 지 3개월도 안돼 건국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임용돼 논란을 불렀다.
이런 기형적 운용의 배경에는 철저한 공생관계가 있다. 정ㆍ관계 인사들은 이력서를 채울 근사한 직함에 금전적 이익까지 챙기고,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대학은 이들의 이름값이나 네트워크를 학교 홍보에 이용하고, 나아가 로비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대학이 시장논리에 휩쓸려 기업화한 지 오래라지만 존립근거마저 허물어서는 안 된다. 임용 절차를 강화하고 최저 강의시간을 두거나 연구 성과를 내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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