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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증세없는 공약은 가능한가

입력
2016.04.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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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증세 없는 복지’는 이제 대략 달성 불가능한 명제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 말을 내세웠던 정권은 집권 3년이 넘도록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고, 그 말을 허구라며 정면 반박했던 이가 갖은 탄압에도 이번 총선에서 75% 득표로 당선된 것을 봐도 그렇다.

이 구호는 점 하나를 더해 ‘증세, 없는 복지’란 조롱을 인터넷에서 당한지 오래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란 말을 직접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기도 했지만, 201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복지 재원 60%는 정부 씀씀이를 줄이고 40%는 비과세 감면 정비 및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하겠다”고 말한 동영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애초부터 ‘증세 없는 복지’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모순에 가까웠다. 복지라는 말이 정책 형태로 나오는 경우엔 ‘돈을 더 쓰겠다→돈이 더 필요할 것이다→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출을 효율화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도로 구조조정 할 수 있는 예산도 분명 있지만, 급증하는 복지 수요를 맞추기 위한 재원은 거기서 0 하나쯤은 더 붙여줘야 한다.

총선이 끝난 지금은 ‘증세 없는 공약’이란 말을 좀 따져봐야 할 때다. 결론적으로 ‘복지’ 대신 ‘공약’이란 표현을 써도,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이 내세운 주요 공약을 보면 법 또는 제도를 고치는 일도 있지만, 대개가 돈을 써야만 달성 가능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현재 지출을 확 줄이기도 어렵기 때문에, 지금 세수 수준을 넘어 추가로 돈이 나올 구멍이 필요하다.

각 정당들이 공약과 함께 재원조달 방향을 형식적으로나마 내놓기는 했다. 새누리당은 공약집에서 “국민 추가 부담 없이 정상적 세입 구조 내에서 소요재원(4년간 4조3,000억원)을 흡수하겠다”고 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도그마를 아직 거역하지 못한 수준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약에서 “조세부담률을 2%포인트 올려 이명박정부 부자감세 이전으로 되돌리겠다”고 했는데, 과거 수준으로 복원하겠다는 정도다. 국민의당은 준조세 성격인 무역이득공유제 등을 거론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사안에서 세출 구조조정(허리띠 졸라매기)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정의당만이 증세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사회복지세 등으로 공약 재원을 충당하겠다고 했다.

그럴듯한 공약에 비해 정치권의 재원 확충 의지는 부족한 셈이다. 20대 국회가 개원하더라도, 증세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바로 내년이 대통령 선거의 해다. 대선을 앞두고 증세를 앞세울 간 큰 대권주자는 드물다. 일본에서도 소비세 인상 문제는 다케시타, 하시모토, 노다 등 총리 셋을 날린 ‘정권의 무덤’으로 꼽힌다. 증세를 공론화하는 것은 대선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기에, 이번 정권(20대 국회 전반기)에서 증세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겠다. 여당 지도부는 아예 “증세는 다음 정권에서 추진하는 게 맞다”고 못박았다.

시나리오는 셋 중 하나다. 증세를 해서 공약을 실천하든가, 증세 없이 공약을 공약(空約)으로 남기거나, 아니면 나랏빚을 늘려 재원을 조달하거나.

결국 마지막 시나리오로 갈 공산이 커 보인다. 증세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야가 각자 ‘집토끼’ 관리와 외연 확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출을 잇달아 법제화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삼분(三分) 구도는 뒤집어 생각하면 돈 쓰는 정책이 양산되기 딱 좋은 구조다. 캐스팅 보트를 잡은 정당이 있어, 이론상 양쪽 다 이득을 챙길 수 있어 그렇다. 재원은 재정건전성을 헐어 마련하는 식이 될 거다.

공약 달성은 결국 세금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진지한 증세 논의를 미룬다면, 당분간 나랏빚 늘 일만 생기게 될 지 모른다.

이영창 경제부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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