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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위대한 국가, 미국

입력
2018.04.03 15: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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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몇 년 전 본 유투브 동영상이 떠올랐다. 미국이 왜 과거처럼 위대한 국가가 아닌지를 토론하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미국이 지금까지 한 번도 위대한 국가인 적이 없었다면서 웃고 끝났다.

미국 최우선주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UN과 IMF, IBRD 등의 국제기구를 만들고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이런 기구들이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에서는 늘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위상이나 발언권이 약해지면 의례 기여금이나 예산 감축을 압박해서 미국의 순수성을 의심하게끔 만들곤 했다.

보호무역주의도 마찬가지다. 자유 무역을 옹호하여 세계 무역을 증진시키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개도국이 혜택을 본 것은 사실이다. 특히 최빈국 특혜 관세제도 등은 우리가 무역을 통해 단숨에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발판이기도 했다. 미국의 대외개방은 동시에 우수한 노동력과 물건을 값싸게 들여와 임금을 안정시키면서도 국민들이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리도록 했다.

미국은 일본이나 중국 등이 자신이 내세운 자유무역의 기치 아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누릴 경우에는 한 번도 좌시한 적이 없다. 특히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야기되면 온갖 방법으로 상대방 국가를 압박해서 미국이 원하는 정책 목표를 달성했다. 표현은 차이가 있었지만 본질은 같았다.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4%수준에 육박하자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주도해서 엔화 가치를 3년 만에 두 배로 올렸다. 사상 최대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한 중국에게 600억 달러짜리 고지서를 내민 것은 데자뷰이다. 중국이 30억 달러짜리 수류탄으로 맞서지만 G2가 아닌 G1.25(중국은 IMF미국 지분의 1/4보유)임을 곱씹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가하고 있는 보호관세나 방위비 부담 증액 요구도 예상할 수 있던 압력일 뿐이다. 몇 년간 우리나라가 GDP의 7%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환율을 불투명하게 운용해서 유지ㆍ발전시켰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미국이 일관되게 보여온 인식이다. 원화가 일본의 엔화처럼 국제화되었더라면 미국은 진작 플라자 합의와 같은 조치를 단행했을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 요구도 오바마가 2009년 제기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미국의 거센 압력을 이겨낼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풀이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먼저 일어나 웃는다고 했던 김수영 시인처럼 꿋꿋하게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최고 명약일지 모른다.

역설적으로 작은 목소리지만 미국과 만나는 G20, APEC 등 국제회의에서 자유무역의 가치를 지지해야 한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환율의 투명성도 선제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도록 높여야 한다. 우려도 있지만 우리의 시장경제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의 압력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는 외환보유고나 국가 채무 등의 거시 건전성 지표를 각별히 챙겨야 한다. 86~89년까지 GDP 대비 연평균 4%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가 우리는 미국의 온갖 개방 압력에 시달렸다. 그러고 몇 년 후 IMF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뼈저린 경험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를 환류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과거 일본은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에 나섰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부동산과 고흐의 해바라기와 같은 세계 명화를 사들였다. 일본의 경험은 미국 내 비판여론 증가 등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차라리 우리 젊은이들에게 대거 장학금을 주어 미국에서 공부시키거나 개도국 원조 사업을 확충하여 세계 각국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미국이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닌 마당에 이 기회에 우리가 위대한 국가로 발돋움해 보자는 것이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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