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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 “광주 사태, 남편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거듭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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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 “광주 사태, 남편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거듭 부인

입력
2017.03.2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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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자서전에서 주장 ‘논란’

12ㆍ12사태, 6ㆍ29선언 등

현대사 사건 비화도 공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8개 항의 민주화 조치 약속이 담긴 파격적인 대국민 선언문이 발표됐다. 당시 여당(민주정의당)의 대선후보인 노태우 대표의 이른바 6ㆍ29선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78)씨는 “그 선언은 국민과 야당의 기대를 뛰어넘는, 그 시절로선 거의 완벽한 정치적 명작이었고 노태우란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켰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직선제 선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씨의 기억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17일 당시 여당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을 집무실로 불렀다. “국민의 뜻이 직선제라면 그걸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는 전 전 대통령의 제안을 노 전 대통령은 단박에 거부했다. “직선제 개헌을 선택하면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틀 간의 설득 끝에 노 전 대통령이 제의를 수용하면서 6ㆍ29선언이 나왔다는 게 이씨 기억이다.

이씨는 24일 출간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자작나무숲 펴냄)에서 6ㆍ29민주화선언을 비롯해 12ㆍ12쿠데타,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동기 현대사에 얽힌 뒷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에서 풀어놨다. “12ㆍ12, 5ㆍ17, 5ㆍ18에 대한 편집증적인 오해와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며 전 전 대통령과 제5공화국의 복권이 주요 집필 의도임을 시사했다.

이씨는 “그분과 제5공화국에 쏟아졌던 비난의 해일 앞에 묵직한 빗장을 지르고 앉아 신음하며 적어간 기록물”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전 전 대통령을 ‘그분’으로 지칭했다.

작정대로 책 곳곳에서 이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전 전 대통령과 5공화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뒤집기 위해 애썼다.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가 최규하 전 대통령을 쫓아냈다는 일반적 시각과 달리 “후임자가 돼달라는 최 전 대통령의 권유를 남편이 고사하다 결국 들어줬다”고 하는가 하면, 5ㆍ18운동을 “충격적 무장소요사태”라고도 적었다.

특히 그는 전 전 대통령이 5ㆍ18 당시 발포 명령과는 무관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거듭 되풀이했다. “엄청난 비극을 잉태한 소요사태가 어찌된 셈인지 광주사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편을 임기 내내 그리고 퇴임 후 법정과 감옥에 이르도록 악몽처럼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이씨는 “5ㆍ18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 내릴 권한 자체가 없었다”고 전 전 대통령의 책임을 부인했다.

전두환(왼쪽) 전 대통령과 이순자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두환(왼쪽) 전 대통령과 이순자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6년 재판 당시 이씨가 5ㆍ18 희생자들 원혼의 해원을 권하는 승려에게 “저희 때문에 희생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니 우리 내외도 5ㆍ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지만, 그런 명분이 그 큰 슬픔 앞에서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했다는 대목에서도 그렇다. 가해 사실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5ㆍ18민주화운동 피해자 가족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고까지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자살 충동마저 느꼈다고 토로했다. 박근혜 정부가 일명 ‘전두환 추징법’을 만들고 전 전 대통령 은닉 재산 환수 프로젝트를 고강도로 진행하던 2013년 당시다. 이씨는 “고향 뒷산 절벽에서 뛰어내린 어느 전직 대통령의 얼굴이 머릿속으로 잠시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생을 포기할 뻔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극단적 행동을 못하게 막아준 건 “일관되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그분의 존재”였다며 남편을 향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의외의 호평도 등장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씨에 대해서다. 이씨는 “김 대통령 재임 중 이 여사는 매년 설, 추석, 그리고 그분의 생신과 내 생일에 선물을 보내 축하하는 일을 단 한 번도 잊지 않으셨고 올해까지 그 진심 어린 정성과 예는 계속되고 있다”며 “이 여사는 고령인데도 난화분과 함께 장뇌삼을 보내면서 직접 쓴 편지까지 동봉해 보내줘 그 정성과 섬세함이 감동을 줬다”고 썼다.

반면 노 전 대통령 내외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혹평했다.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씨에 대해서는 “말 속에서 싸늘한 냉기마저 느껴져 놀라웠다”고 했고,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선 “우리 가족에게 가한 정치보복적 가해가 너무 악성이어서 용서나 화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12ㆍ12 쿠데타 전날 비화도 이씨는 공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네 아이에게 “수사 결과 강력한 용의자(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가 드러났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서 아버지가 전모를 밝히려 하다가는 자칫하면 내 목숨과 명예, 아니 우리의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는 너희를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비장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그날 밤 잠자리에서 남편이 “모든 일은 하늘에 맡깁시다. 사심 없이 하는 일이니 하늘의 보살핌이 있을 것이오”라고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씨 자서전과 함께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도 내달 초 발간될 예정이다. 총 2,000쪽에 달하는 회고록은 10ㆍ26사태 이후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1권 ‘혼돈의 시대’, 대통령 재임 중 업적을 기록한 2권 ‘청와대 시절’, 성장 과정, 군인 시절, 대통령 퇴임 후를 담은 3권 ‘황야에 서다’ 등 세 권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1981년 1월 민주정의당 창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당 총재와 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후 부인인 이순자(오른쪽)씨와 함께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1년 1월 민주정의당 창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당 총재와 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후 부인인 이순자(오른쪽)씨와 함께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24일 출간된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의 자서전. 자작나무숲 제공
24일 출간된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의 자서전. 자작나무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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