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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입고 발레하는 미스터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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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입고 발레하는 미스터 플로리스트

입력
2017.03.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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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행복감을 주고 싶어 하는 일인데 성별이 중요한가요?”

허정목(29)씨는 플로리스트다. 꽃 전문가가 되겠단 일념으로 새벽엔 남대문 꽃 시장에서 도매 일을, 낮에는 교육 과정을 수강하며 1년을 보냈다. 지난한 노력 끝에 2014년 10월 인천 부평에 본인의 꽃집을 개업했다.

금남(禁男)구역이 무너지고 있다. 허씨처럼 ‘여성 전용’이란 꼬리표에 갇혀있던 영역에 도전하는 남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직업, 옷차림, 취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별의 벽을 허물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꽃을 든 남자? 이젠 ‘꽃 만드는 남자’

꽃다발을 만드느라 분주한 허정목 청춘Blossom 대표의 손과 꽃꽃이 작업 중인 허 대표의 모습(오른쪽). 허정목씨 제공
꽃다발을 만드느라 분주한 허정목 청춘Blossom 대표의 손과 꽃꽃이 작업 중인 허 대표의 모습(오른쪽). 허정목씨 제공

과거 광고 기획자로 일했던 허씨는 디너쇼를 연출할 때 플로리스트들과 협업하며 꽃의 매력에 눈떴다. 허씨는 “기획이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면 꽃꽂이는 개인 맞춤형으로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남자라 서러운 적도 있었다. 그는 “여풍이 센 분야다 보니 ‘남자는 센스가 부족하다’는 편견과 맞서 싸워야 했다” 고 토로했다. 허씨는 “알고 보면 남자들에게도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귀띔한다. 꽃이 들어오는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크고 손도 거칠어지기 때문에 여자 직업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남성들도 기술적인 부분만 숙지하면 도전할 만한 일”임을 강조했다.

치마가 여성의 전유물이라뇨

킬트 치마를 입은 장재원씨와 긴 치마를 입고 공연 준비에 나선 이동희씨(오른쪽)의 모습. 장재원, 이동희씨 제공
킬트 치마를 입은 장재원씨와 긴 치마를 입고 공연 준비에 나선 이동희씨(오른쪽)의 모습. 장재원, 이동희씨 제공

“치마가 여자 옷 이라는 건 편견이죠. 요즘 옷들이 얼마나 자유분방한데”

홍대 의류 가게에서 근무하는 장재원(26)씨는 지난 1월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 킬트 치마와 비슷한 하의를 입었다. 치마를 즐겨 입진 않지만 꺼릴 것도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장씨는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유교문화가 옷 차림의 장벽을 높인 것 같다”며 “옷은 유니크 하고픈 내 욕망을 담는 캔버스”라고 설명했다.

치마의 실용성에 반한 이도 있다. 콘트라베이스 즉흥 연주가 이동희(29)씨는 3년 전 태국 여행 중 우연히 치마를 입었다가 그 매력에 빠졌다. 이씨는 “생각보다 시원하고 편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공연무대에 오를 때 치마를 즐겨 입는다. 이씨는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라 자유롭게 옷을 입는 편”이라며 “가끔 개량한복 같은 여성 전통의상을 입기도 한다”고 말했다.

퇴근 후 발레리노로 변신하는 사나이

발레 수업에 열중인 남성들. 더 시티 발레 제공
발레 수업에 열중인 남성들. 더 시티 발레 제공

직장인 박다니엘(30)씨는 매주 수요일, 금요일 저녁 토슈즈를 신는다. 체형 교정 운동을 찾던 중 번화가에서 발레 학원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상담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 강사는 박씨에게 “남자분들도 많이 하니 어려워 말고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마침 남자 수강생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는 그렇게 석달 째 발레를 배우고 있다.

박씨는 “평소 안보던 손 끝이나 발 끝까지 보게 되면서 자신의 몸을 더 보듬고 사랑하게 되는 게 발레의 매력”이라고 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도 힐링 포인트다. 그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여성스러운 운동이라는 편견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남성이 늘고 있다. 신촌 A 댄스 아카데미 관계자는 “체형 교정 운동이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남성 수강자도 증가추세”라며 “서로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남성들도 위화감 없이 발레를 배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이 맞물려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 분석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는 “새로운 분야를 발굴하는 진취성이나 도전정신이 칭찬받는 ‘자기 계발 시대’의 단면”이라며 “전통적 젠더 규범보다는 개개인의 노력, 취향이 존중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봤다.

과거보다 활발해진 성 담론도 한 몫 했다. 김 교수는 “페미니즘∙성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잦아지며 ‘남성성, 여성성’이란 개념을 억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며 “고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기 다운 것이라는 신념이 생겨 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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