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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호찌민엔 무례한 한국인… 드라마와 달라요?”

입력
2017.03.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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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인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가수, 배우 이름 하나둘씩 모르는 사람이 없고, 한국 화장품에 열광한다. 옷 입는 것 헤어스타일까지 한국을 따라 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그들만큼 베트남을 알지 못하다.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 가장 먼저 쌀국수를 떠올리고 그다음에 하롱베이, 다낭, 아오자이 정도를 꼽는 수준이다. 이 이상의 것들을 단박에 떠올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베트남 커피를 안다고 하면 많이 아는 축에 속할 정도다. 베트남 중산층의 30대 가장과 20대 미혼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베트남과 그들의 생각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아침 식사는 길에서 700원에 해결”

1. 33세 중산층 가장 딘 비엣 지웅

공대 나와 외국계 기업서 영업

은행원 아내, 3세 아들과 생활

집은 18평 시세는 4500만원

“마트 생겼지만 아직 시장이 좋아”

“아들 결혼 후 같이 살 생각 없어”

지난 3일 퇴근 후 곧장 집으로 달려온 딘 비엣 지웅이 아들 구몬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보통 자녀 둘을 두지만 지웅 부부는 하나만 낳기로 했다.
지난 3일 퇴근 후 곧장 집으로 달려온 딘 비엣 지웅이 아들 구몬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보통 자녀 둘을 두지만 지웅 부부는 하나만 낳기로 했다.

내 이름은 딘 비엣 지웅. 올해 서른 세 살. 은행에 다니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국인처럼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세 살짜리 남자아이의 아빠다. 호찌민공대에서 기계학을 전공했고 외국계 기업에서 영업업무를 맡고 있다.

일과는 보통 오전 6시에 시작된다. 8시까지 출근하자면 적어도 6시 전에 일어나야 한다. 7시에 문을 여는 유아원에 아들을 맡기고 아내를 출근시킨 뒤 호찌민 시내 한복판에 있는 회사로 출근한다. 우유와 과일 등으로 아들만 간단하게 먹일 뿐,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아침을 집에서 먹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사 먹는다. 싸고 빠르고 편리하며 심지어 집에서 해먹는 것보다 맛있다. 1만3,000~1만5,000동(약 650~750원)이면 해결된다.

모든 이동은 오토바이로 한다. 대중교통이 없다시피 해 이게 없으면 생활이 안 된다. 4년 전 4,300만동(약 217만원)을 주고 새로 구입한 일본 혼다 제품이다. 가장 보편적인 모델이다. 하루 평균 12㎞ 주행에 월 연료비 30만동(1만5,200원)이면 충분하다. 택시로 출퇴근 한다면 하루 이틀치 요금이다. 보험도 없어 연료비가 유일한 유지비다. 작년에 전국에서 9,000명 가까운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다친 사람은 헤아릴 수도 없다. 어린 아들과 아내를 싣고 달리다 보면 안전한 자동차 구입 생각이 굴뚝같지만 세금이 크게 부담된다. 베트남에서 제일 작은 기아 모닝이 5억동(2,500만원)이다. 맞벌이라 무리해서 산다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보다 4, 5배 비싼, 주차장 딸린 아파트로 이사해야 한다. 지금 우리 형편에 자동차를 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살고 있는 집은 지어진 지 45년이 넘은 아파트. 호찌민 떤선녓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아파트다. 당시 미군이 지었다고 한다. 오래됐지만 튼튼해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거실과 안방, 부엌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폭은 좁지만 깊은 전형적인 베트남 주택 구조다. 프랑스식민지 시절 도로변 주택의 폭을 측정해 세금을 부과했던 탓에 아직도 많은 주택이 길쭉한 형태이다. 면적 60㎡(약 18평)에 시세는 9억동(약 4,536만원) 수준이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부모님과 함께 한 때 최대 다섯 식구가 살기도 했다. 4년 전 결혼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고, 부모님과 같이 살다 2년 전 어른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시면서 독립했다. 베트남에선 보통 신랑 부모가 집을 제공하고, 2,3년 함께 산다. 우리 부부도 아들이 결혼할 때 집 하나 마련해 줄 생각이지만 한국 드라마에서처럼, 아들 부부와 같이 살 생각은 없다. 그땐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베트남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많은 외국인이 베트남 하면 자전거를 떠올리지만 호찌민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을 찾긴 힘들다. 면허가 없는 어린 학생들이 타긴 하지만, 그것도 요즘엔 전기자전거로 바뀌고 있다. 병원도 늘고 있으며 5년 전만 해도 구경하기 어렵던 대형할인마트, 극장이 주변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근처에 대형 공항이 내년에 또 하나 문을 연다. 임금은 해마다 10% 가까이 오르고 있고, 항공편으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부모님도 얼마전 한국 남이섬 여행을 다녀왔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롯데마트나 에이온, 빅씨 등 대형할인마트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재래시장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압도적 비율의 사람들이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본다. 대형마트는 비싸고 멀다. 걸어서 갈 수 없다. 결정적으로 시장 물건이 훨씬 더 신선하다. 갈고리에 걸린 채 상온에서 팔리는 고기도 당일 새벽에 도축한 것들이다. 더 일찍 갈수록 더 싱싱한 채소와 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 장을 보는 날이면 아내는 오전 6시에 집을 나선다. 집에서는 요리를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 해서 먹고 주중 저녁은 근처의 장모님한테 가서 아내와 함께 먹는다. 하원한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내는 여전히 어머니가 어렵다. 저녁 술자리가 잦았지만, 아들이 생긴 뒤 급격히 줄었다.

집에 와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민이 쌓인다. 아들 때문일 수도 있고, 한국 드라마 영화 영향일 수도 있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공기는 물론 삶의 환경은 언제 그들의 그것처럼 투명하고 깨끗해질까, 하는 걱정이 주를 이룬다. 아들만큼은 해외로 보내서 공부시키고 싶다. 우리 부부만 그런 게 아니다.

“노처녀에 속하지만 현재 삶에 만족”

2. 27세 직장여성 부이 콱 귀인 누

한국계 기업에서 회계 업무

월급 55만원, 공장 근로자 두 배

저축 못 해도 비싼 오토바이 소유

“한국인 무례한 모습 많이 봐 실망”

“내 부모까지 챙겨줄 남자 기다려”

한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부이 콱 귀인 누가 3일 일과를 마친 뒤 자신의 ‘애마’ 베스파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부이 콱 귀인 누가 3일 일과를 마친 뒤 자신의 ‘애마’ 베스파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고 있다.

나는 부이 콱 귀인 누. 올해 스물일곱 살. 한국계 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보고 있다. 월급은 1,100만동(약 55만4,000원) 수준. 호찌민 외곽의 봉제공장 근로자들이 받는 월급(600만동ㆍ약 30만2,000원)에 비하면 두 배가량 많다. 베트남 여자들이 25세 전후로 결혼한다고 보면 과년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여자들을 ‘골드미스’라고 한다지? 친구 절반은 결혼했고 나머지는 미혼이다. 집안에서는 성화지만 빨리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좀 더 자유롭게, 멋지게 살고 싶다. 3년 전 이탈리아 브랜드, 베스파 오토바이를 구입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웬만한 오토바이 2대를 살 수 있는, 9,000만동(약 453만원)을 지불했다. 매연과 먼지 때문에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랑 오토바이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후 5시면 ‘칼퇴근’ 해 친구들과 찻집에서 수다를 떨기도 하지만 밤 운전은 위험해서 되도록 일찍 귀가하는 편이다. 7시 정도에 그날 TV 뉴스를 보고, 이어지는 오락 프로그램들을 시청한다.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내다 자정쯤 잠에 드는 식이다. 주중 하루 2시간 이상 TV를 보지만 한국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고, 베트남에서 종종 보는 한국인들의 무례한 모습과 드라마 속 한국인들의 모습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 한국으로 시집가서 노예처럼 살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의 이야기가 크게 보도됐던 적이 있다. 한국 회사로 옮겼다니까 친구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한국 회사에 왜 들어갔어?”

지금 회사는 지난해 구정 연휴를 보내고 들어왔다. 첫 직장이던 베트남 제약사에서 3년 동안 일했지만 급여가 만족스럽지 못해 지난해 구정 연휴 보너스를 받고 그만뒀다. 보너스를 챙긴 다음 긴 연휴에 다음 일자리를 알아보고, 새해 새 마음으로 새 직장에 출근하는 일은 베트남에서 대단히 자연스럽다. 급여와 복지가 만족스럽고 안정적인 일이라는 판단이 들 때까지 설 명절 직장 대이동 트렌드는 반복된다. 한국어를 일정 수준 이상 구사하면 지금보다 월급을 배는 받을 수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지만 어려워 포기했다.

내가 버는 돈은 부모님 등 가족 생계비로 쓰인다. 부모님이 모두 60세를 넘겼다. 혹시 모를 결혼에 대비해 저축도 하지만 미미하다. 결혼을 하더라도 내 부모님을 챙겨줄 남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가난한 집 여자들이 대만이나 한국, 일본으로 시집가서도 베트남 부모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얼마 전까지 만나던 남자 친구랑 헤어진 것도 이런 이유가 제일 컸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는 친구였지만 온통 자기 가족들 생각만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땐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멀리 훌쩍 떠나던데, 여기서는 어렵다. 멋진 오토바이가 있어도 여행을 가기 힘들다. 아침 출근길 14㎞를 1시간 운전하는 것도 힘들어서 출근 직후 바로 일을 하지 못할 정도다.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위험해 아웃도어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대신 주로 친구 집에 가든지 집으로 초대해서 시간을 보낸다, 시장에서 장을 같이 보고, 집에서 요리해서 같이 먹는다. 수다를 떨다가 갑갑할 때는 노래방에 가기도 한다. 노래는 잘 못하지만 ‘샤우팅’을 통한 스트레스 배출에 의미를 두고 있다. 주말 낮에 가면 1만6,000동(약 800원)으로 한 시간 동안 논다.

노래방에서는 베트남 노래나 팝송을 부른다. 아는 한국 노래는 없다. K팝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주로 10대들이다. 나도 장동건, 이영애 등 10년 전에 봤던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뿐 새로 업데이트된 것은 거의 없다. 한국? 한류? 싫지는 않지만 썩 좋아할 이유도 그다지 없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비슷하다. 베트남 내 한국, 한국인에 대한 선호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자꾸 이야기하는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좋아하지만, 일본은 존경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이 중요하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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